지금 세계의 겨울은 이탈리아 북부의 산맥과 도시 사이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이 대회 중반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동계올림픽은 하나의 도시가 아닌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발텔리나–안테르셀바로 이어지는 분산형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다. 알프스의 설원과 산업 도시 안의 실내 링크가 하나의 대회 안에서 서로 다른 리듬을 만든다.
눈과 얼음의 상태는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인공설과 자연설을 병행한 운영은 기후 변수에 대한 대응을 비교적 매끄럽게 이어가고 있다. ‘기후 위기 속 올림픽’이라는 우려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현재까지는 관리되는 긴장 속에서 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경기 초반부는 전통적인 강국들의 기세가 두드러진다. 스키 종목에서는 오스트리아와 노르웨이가, 빙상 종목에서는 네덜란드와 캐나다가 꾸준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피겨스케이팅과 쇼트트랙, 스노보드 종목에서는 세대교체의 얼굴들이 상위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대회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화려함보다는 절제에 가깝다. 전 세계가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를 동시에 마주한 가운데, 대형 신축 경기장을 최소화하고 기존 시설을 재활용한 ‘지속 가능한 올림픽’의 실험이 이번 대회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눈여겨볼 변화 중 하나는 스포츠 세대의 교차다. 이번 대회에는 ‘마지막 올림픽’을 치르는 선수들과 ‘첫 올림픽’ 무대에 선 선수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전설들이 조용히 퇴장하고, 경험보다 회복력과 데이터 활용에 익숙한 선수들이 경기를 다시 설계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첨단 기술 역시 경기의 일부로 작동하고 있다. AI 기반 트레이닝, 실시간 바이오 데이터 분석, 빙질·설질 예측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메달 경쟁은 더 이상 근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한국 설상 종목의 희망이자 이번 대회에서 한국 선수단에 뜻깊은 은메달을 안겨준 김상겸 선수는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는 선수,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선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좌우명대로 계속 달렸고, 덕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야 가족들에게 메달을 걸어줄 수 있어 기쁩니다." - 김상겸 (스노보드, 대한민국) -
로 많은 선수들의 귀감이 되었다. 알파인 스키의 살아있는 전설 미케일라 시프린(Mikaela Shiffrin)이 대회 전 남긴 인터뷰도 많은 사람들 입에서 회자되고 있다.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과정을 즐기려는 베테랑의 시각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중요한 건 내가 즐길 수 있는 순간을 찾는 것이고, 그 안에서 평화와 기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매 경기 제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죠."— 미케일라 시프린 (알파인 스키, 미국)
이와 대비되는 선수로는 '이상화 키즈'로 불리며 첫 올림픽 무대에 선 스피드스케이팅 신예 이나현 선수이다. 그녀의 멘트는 '스포츠 세대의 교차' 지점에서 젊은 선수에게 활력을 더해줄 것 같다.
"너무 꿈꿨던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와서 정말 기뻐요. 목표를 크게 잡자면 포디움(시상대)이지만, 그보다 후회 없는 경기를 하는 게 지금 제 가장 큰 목표예요. 스피드스케이팅 하면 제 이름이 떠오를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 이나현 (스피드스케이팅, 대한민국) -
올림픽의 무게감 역시 달라지고 있다. 국가 간 대항전의 긴장보다 선수 개인의 이야기, 삶의 맥락, 경기 뒤의 서사가 더 자주 호명된다. 중계와 기사에서도 기록보다 얼굴을, 순위보다 서사를 읽으려는 시선이 늘어나고 있다. 올림픽이 다시 ‘사람의 표정’을 찾는 과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대회 후반부의 관전 포인트는 빙속과 피겨스케이팅의 최종 순위 변화, 알파인 스키와 프리스타일 종목에서의 변수, 혼성·팀 경기에서의 이변 가능성으로 압축된다. 이번 동계올림픽은 기록보다 방식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의 메달 흐름을 보면 노르웨이,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설상·빙상 전통 강국들이 상위권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 종목별로는 노르웨이와 오스트리아가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 알파인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네덜란드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북미의 캐나다와 미국은 프리스타일과 아이스하키, 스노보드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가장 큰 대륙인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한국이 쇼트트랙과 일부 빙상 종목에서 꾸준한 경쟁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금메달 쏠림 현상이 점차 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은·동메달의 분산이 확대되고, 혼성·팀 종목에서는 중위권 국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메달 경쟁의 지형이 서서히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머지않아 눈은 녹고 얼음은 사라지겠지만, 올림픽이 남기는 질문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올림픽 이후 일부 국가들이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던 것처럼, 스포츠 이벤트는 단순한 승부를 넘어 사회와 국가의 방향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왔다.
이번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은 승부를 가르는 축제이면서 동시에 기후와 인간, 급격한 기술 변화 속에서 인간이 이 지구 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또 하나의 무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