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구조를 예측해 생명과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공지능(AI) '알파폴드(AlphaFold)'에 이어,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가 이번에는 인간 유전체(Genome)의 가장 난해한 영역으로 꼽히는 비암호화 DNA(Non-coding DNA) 해독에 도전했다. 인간 유전체의 약 98%를 차지하는 비암호화 DNA는 단백질을 직접 생성하지 않지만 유전자의 발현과 세포 기능을 조절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그동안 이 영역은 기능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어려워 '유전체의 암흑물질(Dark Matter)'로 불려왔으며, 암과 희귀질환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 연구의 최대 난제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가운데 구글 딥마인드는 인공지능 모델 '알파지놈(AlphaGenome)'을 개발해 유전자 조절 변이(Regulatory Variant)가 생물학적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통합적으로 예측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지가 아브세크(Žiga Avsec) 박사를 제1저자로, 나타샤 라티셰바(Natasha Latysheva), 준 청(Jun Cheng), 귀도 노바티(Guido Novati), 카일 R. 테일러(Kyle R. Taylor), 톰 워드(Tom Ward), 클레어 바이크로프트(Clare Bycroft), 앤드루 시니어(Andrew Senior),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 푸시미트 콜리(Pushmeet Kohli) 등 구글 딥마인드 연구진이 공동 수행했다. 논문 제목은 「알파지놈(AlphaGenome)을 활용한 유전자 조절 변이 효과 예측의 발전(Advancing Regulatory Variant Effect Prediction with AlphaGenome)」이며, 2026년 1월 28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 제649권 제8099호에 온라인 게재됐다. 연구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인간 유전체의 비암호화 영역에서 발생하는 유전자 조절 변이의 기능을 고정밀도로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연구의 핵심은 지금까지 각각의 기능을 개별적으로 분석하던 기존 유전체 인공지능 모델의 한계를 하나의 통합 모델로 극복했다는 데 있다. 기존 모델들은 리보핵산(RNA) 스플라이싱(Splicing), 유전자 발현(Gene Expression), 크로마틴 구조(Chromatin Structure), 전사인자 결합(Transcription Factor Binding) 등 특정 기능만 예측하거나 비교적 짧은 DNA 서열만 분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알파지놈은 최대 100만 개의 염기서열(1 메가베이스, 1 Megabase)을 한 번에 입력받아 유전자 발현, 전사 개시(Transcription Initiation), 리보핵산 스플라이싱, 크로마틴 접근성(Chromatin Accessibility), 히스톤 변형(Histone Modification), 전사인자 결합, 3차원 염색질 구조(Three-dimensional Chromatin Structure) 등 다양한 유전체 기능을 동시에 분석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단일 인공지능 모델이 유전체의 복합적인 조절 메커니즘을 통합적으로 예측한 것은 이번 연구가 처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구진은 인간과 생쥐에서 확보한 방대한 기능유전체(Functional Genomics) 데이터를 이용해 알파지놈을 학습시켰다. 그 결과 인간에서는 5,930개, 생쥐에서는 1,128개의 기능성 유전체 정보를 동시에 예측할 수 있었으며, 특히 염기 하나가 다른 변이가 유전자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단일 염기 수준(Single-base Resolution)까지 분석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는 실험실에서 수개월이 걸리던 변이 분석 과정을 인공지능이 사전에 예측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질병 연구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성능 평가에서도 알파지놈은 기존 최고 수준(State-of-the-Art)의 인공지능 모델들을 대부분 능가했다. 연구진이 수행한 다양한 성능 비교(Benchmark) 시험에서 유전체 기능 예측과 변이 효과 예측의 거의 모든 항목에서 기존 모델보다 우수하거나 동등한 성능을 기록했다. 이는 특정 기능에 특화된 인공지능이 아니라 유전체 연구 전반에 활용할 수 있는 범용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한 결과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알파지놈의 실제 활용 사례로 혈액암과 관련된 TAL1 종양유전자(TAL1 Oncogene) 주변의 조절 변이를 분석했다. 인공지능은 특정 DNA 변이가 유전자 발현을 변화시키는 과정뿐 아니라 크로마틴 구조 변화와 리보핵산 스플라이싱 변화까지 동시에 예측했으며, 이러한 결과는 실제 실험 결과와 높은 일치도를 보였다. 이는 암뿐 아니라 희귀 유전질환, 심혈관 질환, 신경계 질환 등 다양한 질병에서 병원성 변이(Pathogenic Variant)를 규명하는 데 새로운 연구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그동안 기능을 알기 어려웠던 비암호화 DNA를 본격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인간 유전체 가운데 단백질을 만드는 영역은 약 2%에 불과하며, 나머지 대부분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최근 대규모 유전체 연구에서는 질병과 관련된 변이의 상당수가 이 비암호화 영역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기능을 확인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알파지놈은 이러한 '유전체의 암흑물질(Dark Matter of the Genome)'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최초의 범용 인공지능 플랫폼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과 유전체 연구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진은 알파지놈이 생명과학 실험을 대체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연구자들의 가설을 빠르게 검증하고 실험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연구 파트너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자들은 인공지능이 제시한 변이 예측 결과를 바탕으로 실험 대상을 효율적으로 선정하고 질병의 원인을 보다 빠르게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신약 개발, 정밀의학, 유전자 치료(Gene Therapy)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효율성과 성공 가능성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알파폴드가 단백질 구조 예측 분야를 혁신했다면 알파지놈은 인간 유전체의 조절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술이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이 단순한 데이터 분석 도구를 넘어 생명현상의 원리를 이해하고 새로운 생물학적 발견을 이끄는 핵심 연구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인공지능과 생명과학 융합의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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