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물학에서 미세중력·화성 대기 연구로 영역 확장, NASA ‘드래곤플라이’ 통해 생명 이전의 화학 과정 탐구
지구의 생물에서 우주의 미세중력 환경으로, 다시 화성의 대기를 거쳐 토성의 위성 타이탄까지. 서로 멀어 보이는 연구 분야를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온 과학자가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프로그램 과학자 델리아 산티아고-마테레세(Delia Santiago-Materese)다.
NASA Science는 10일 공식 X 계정을 통해 산티아고-마테레세의 연구 여정을 소개했다. 현재 그는 NASA가 추진하는 타이탄 탐사 임무 ‘드래곤플라이(Dragonfly)’를 비롯해 목성 탐사선 ‘주노(Juno)’, 디스커버리 프로그램의 여러 과학 임무를 지원하고 있다.
산티아고-마테레세는 미국 워싱턴 NASA 본부 행성과학부(Planetary Science Division)에서 프로그램 과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프로그램 과학자는 NASA 본부와 개별 우주 탐사 임무 사이에서 과학적 목표와 연구 방향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의 연구는 생물학에서 시작됐다.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생물과학을 공부하던 그는 우주생물학(astrobiology)을 접하면서 생물학과 우주과학을 함께 바라보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생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이 다른 천체에서 생명의 가능성과 기원을 탐구하는 연구로 이어진 것이다.
이후 연구 영역은 빠르게 넓어졌다. 우주왕복선에 탑승하는 설치류의 영양 연구와 과학 탑재체 데이터 관리 업무를 경험했고,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는 초파리를 이용한 미세중력 생물실험 개발을 지원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크루즈에서는 화성 대기의 구름 속 얼음과 기후모델을 연구했으며, NASA의 ‘패스웨이스(Pathways)’ 프로그램을 거쳐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그가 참여하고 있는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가 드래곤플라이다. 드래곤플라이는 토성의 가장 큰 위성인 타이탄을 탐사하기 위해 개발되고 있는 회전익 탐사선이다.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타이탄의 여러 지역을 직접 비행하면서 표면의 화학적 조성과 환경을 조사하도록 설계됐다.
NASA는 드래곤플라이를 2028년 7월 이후 발사해 약 6년간의 우주 비행을 거쳐 2034년 말 타이탄에 도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계획대로 임무가 진행되면 다른 천체에서 여러 장소를 이동하며 비행 탐사를 수행하는 첫 과학 임무가 된다.
드래곤플라이가 타이탄으로 향하는 이유는 이곳의 독특한 환경 때문이다. 타이탄은 두꺼운 대기를 가지고 있으며 표면에는 모래언덕과 호수, 강, 협곡, 산 등 다양한 지형이 존재한다. 지구의 물 순환과 비슷한 현상도 나타나지만, 타이탄의 표면을 순환하는 액체는 물이 아니라 메탄과 에탄 같은 탄화수소다.
특히 타이탄에는 탄소를 포함한 유기분자가 풍부하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타이탄을 생명이 탄생하기 이전에 어떤 화학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보고 있다.
드래곤플라이 역시 타이탄에서 생명체를 직접 발견하는 데 목적을 둔 탐사선은 아니다. 핵심은 ‘전생명 화학(prebiotic chemistry)’, 즉 생명이 출현하기 전 유기물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복잡한 화학적 구조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밝히는 데 있다.
탐사선은 타이탄의 여러 지점을 이동하며 표면 물질을 채취하고 성분을 분석할 예정이다. 주요 탐사 지역 가운데 하나는 지름 약 80㎞의 셀크(Selk) 충돌구다. 과학자들은 과거 충돌 과정에서 액체 상태의 물과 유기물질이 서로 접촉하면서 화학반응이 일어났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드래곤플라이에 탑재되는 질량분석기 ‘DraMS(Dragonfly Mass Spectrometer)’는 현장에서 채취한 시료의 화학적 성분을 분석하는 역할을 맡는다.
산티아고-마테레세가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화학적 복잡성이다. 그는 NASA와의 인터뷰에서 타이탄의 분자가 어느 정도까지 복잡하게 발전했는지, 그 과정에서 일정한 화학적 패턴을 발견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나타냈다.
특히 그는 “복잡한 화학은 존재하지만 생명은 없는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생명 이전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드래곤플라이가 풀어갈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에 앞서 생명이 나타날 수 있는 화학적 조건과 과정을 살펴보겠다는 의미다.
NASA는 현재 드래곤플라이의 제작과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탐사선은 미국 메릴랜드주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연구소(APL)를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으며, 발사를 위한 단계적인 시험을 거치고 있다.
생물학에서 출발한 산티아고-마테레세의 연구는 미세중력 환경과 화성 대기, 목성 탐사를 거쳐 태양계 외곽의 타이탄까지 이어졌다. NASA가 10일 X 게시물에서 그의 경력을 ‘태양계 외곽을 향한 굽이치는 진로(a meandering career path)’라고 표현한 것도 이러한 연구 여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는 우주과학의 오래된 질문 하나가 놓여 있다. 생명은 어떤 조건에서, 어떤 화학적 과정을 거쳐 시작될 수 있었는가. 드래곤플라이가 타이탄에서 찾아낼 단서가 그 질문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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