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벨상 공식 X, 2024년 수상자 하사비스·점퍼의 '알파폴드2' 연구 성과 재조명
- 신약 개발부터 플라스틱 분해 효소 연구까지, 생명과학의 새로운 가능성 제시
생명체를 구성하는 단백질은 저마다 고유한 입체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구조에 따라 단백질의 기능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 형태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일은 생명현상을 이해하고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 데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복잡한 단백질의 구조를 확인하려면 오랜 시간과 상당한 연구비가 필요했다.
과학자들이 50년 넘게 풀기 위해 노력해 온 이 문제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인공지능(AI)이었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폴드2(AlphaFold2)'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배열을 분석해 3차원 구조를 높은 정확도로 예측하는 기술로, 생명과학 연구의 방식을 크게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벨상 공식 계정(The Nobel Prize)은 5일 사회관계망서비스 엑스(X)를 통해 202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데미스 하사비스와 존 점퍼의 연구 성과를 다시 소개했다.
노벨상 측은 두 연구자가 2020년 알파폴드2를 발표해 오랫동안 과학계의 난제로 남아 있던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에 획기적인 진전을 이뤘으며, 이후 연구자들이 확인한 약 2억 개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성과는 AI가 기존의 과학 연구를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백질의 모양을 알아야 하는 이유
단백질은 근육과 피부를 구성하고 효소와 항체 등 다양한 형태로 생명활동에 관여하는 필수 물질이다. 아미노산이 길게 연결된 사슬 형태로 만들어지지만, 실제로는 서로 접히고 얽히면서 복잡한 3차원 구조를 형성한다.
이때 만들어지는 입체 구조는 단백질의 기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같은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이라도 배열과 접힘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나타낼 수 있다.
특정 단백질이 다른 분자와 어떻게 결합하는지, 어떤 화학반응을 촉진하는지 이해하려면 이러한 구조를 알아야 한다. 질병과 관련된 단백질의 작용을 분석하거나 치료제가 결합할 수 있는 부위를 찾는 과정에서도 입체 구조에 관한 정보가 활용된다.
하지만 아미노산의 배열만 보고 단백질이 어떤 형태로 접힐지 알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단백질 내부에서 수많은 분자 간 상호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를 계산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그동안 X선 결정학과 핵자기공명분광법, 극저온 전자현미경 등 다양한 실험기법으로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 왔다. 이러한 방법은 정밀한 구조 정보를 제공하지만 모든 단백질에 적용하기 어렵고, 연구 대상에 따라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알파폴드2, 아미노산 서열로 3차원 구조 예측
알파폴드2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과정에 AI를 도입해 기존 연구의 한계를 크게 줄였다.
이 기술은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입력받아 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서열의 유사성과 아미노산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다. 이어 인공신경망을 활용해 각각의 아미노산이 공간적으로 어떻게 배치될지 계산하고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한다.
알파폴드2가 과학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20년 열린 국제 단백질 구조 예측 평가대회 'CASP14'에서였다. 당시 알파폴드2는 여러 단백질의 구조를 높은 정확도로 예측하며 기존 기술을 뛰어넘는 성능을 보여줬다.
이후 구글 딥마인드는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 산하 유럽생물정보학연구소(EMBL-EBI)와 협력해 '알파폴드 단백질 구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연구자들이 다양한 생물의 단백질 구조 예측 결과를 무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노벨상위원회는 2024년 화학상 수상자 발표에서 알파폴드2를 통해 연구자들이 확인한 약 2억 개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 수치는 단백질의 구조를 모두 실험으로 밝혀냈다는 의미는 아니다. AI가 아미노산 서열을 바탕으로 계산한 예측 모델이며, 실제 구조와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연구 목적에 따라 추가적인 실험이 필요하다.
신약 개발과 질병 연구에 활용 확대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은 의학과 생명과학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 가능성을 열고 있다.
질병의 발생과 진행에는 여러 단백질의 기능과 상호작용이 관여한다. 연구자들은 관련 단백질의 구조를 분석해 질병이 발생하는 원리를 이해하고 새로운 치료 방법을 탐색한다.
신약 개발에서도 단백질 구조는 중요한 정보로 활용된다. 약물이 표적 단백질의 어느 부분에 결합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후보 물질을 설계하거나 연구 방향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파폴드2는 이러한 과정에 필요한 구조 정보를 제공해 연구자가 유망한 후보 물질을 탐색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실험적으로 구조를 확인하기 어려운 단백질을 연구할 때 유용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항생제 내성 연구도 활용 분야 가운데 하나다. 노벨상위원회는 알파폴드2가 항생제 내성과 관련된 단백질을 이해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세균의 단백질 구조와 작용 원리를 분석하면 항생제에 저항하는 기전을 파악하고 새로운 대응 방법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것과 실제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은 별개의 과정이다. 새로운 의약품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후보 물질의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하고 전임상 및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AI는 이러한 검증 과정을 대신하기보다 연구자가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확보하고 실험의 방향을 구체화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플라스틱 분해 효소 등 환경기술에도 응용
알파폴드2의 활용 범위는 의료 분야를 넘어 환경과 산업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효소에 관한 연구다.
일부 미생물은 특정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를 갖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효소의 구조와 작용 원리를 분석해 분해 효율을 높이거나 새로운 기능을 가진 효소를 개발하는 방법을 탐색하고 있다.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을 활용하면 효소의 입체 구조를 이해하고, 어떤 부분을 변화시켰을 때 기능이 달라질 수 있는지 연구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노벨상위원회 역시 2024년 화학상 발표 당시 알파폴드2가 플라스틱 분해 효소의 구조를 이해하는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산업용 효소와 바이오 소재, 농업 관련 단백질 등 여러 분야에서 응용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다만 예측된 구조가 곧바로 산업적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효소의 안정성과 반응 효율, 생산비용, 실제 환경에서의 작동 여부 등을 검증해야 하며, 상용화까지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2024년 노벨 화학상, 단백질 예측과 설계 기술 인정
알파폴드2의 성과는 2024년 노벨 화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당시 노벨 화학상을 미국 워싱턴대학교의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와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존 점퍼에게 수여했다.
베이커 교수는 컴퓨터를 활용해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한 공로로 상금의 절반을 받았으며, 하사비스와 점퍼는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을 개발한 성과로 나머지 절반을 공동 수상했다.
두 연구는 단백질을 다루는 방식에서 서로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알파폴드2가 아미노산 서열을 바탕으로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는 기술이라면, 베이커 교수의 연구는 원하는 특성을 가진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나는 단백질의 구조를 이해하는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두 성과는 상호보완적인 의미를 갖는다.
노벨상위원회는 이러한 연구가 의약품과 백신, 나노소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AI가 넓힌 연구의 범위, 실험 검증은 여전히 중요
알파폴드2가 단백질 연구에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단백질은 주변 환경이나 다른 분자와의 결합에 따라 구조가 달라질 수 있으며, 일부는 여러 형태로 움직이면서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하나의 예측 구조만으로 단백질의 모든 특성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AI가 제시하는 구조의 정확도 역시 단백질의 종류와 구조 영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특정 분자와의 결합이나 실제 생체 환경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알파폴드2의 예측 결과를 연구의 중요한 기초 자료로 활용하면서도 실제 단백질의 기능과 상호작용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병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알파폴드2가 가져온 변화는 분명하다. 과거에는 단백질 구조를 알아내는 데 상당한 연구 자원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공개된 데이터베이스에서 예측 결과를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노벨상 공식 계정이 이번에 하사비스와 점퍼의 성과를 다시 소개한 것도 이러한 과학적 변화의 의미를 보여준다.
50년 넘게 이어져 온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에 돌파구를 마련한 알파폴드2는 AI가 과학자의 연구를 보완하면서 기존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앞으로 AI 기반 단백질 연구가 신약 개발과 질병 치료, 환경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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