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몬트리올 정상회의서 디지털 무역·핵심광물·연구개발 등 20여 개 협력 조치 발표. 카니 총리, EU 준회원국 수준의 관계 추진하며 2027년까지 새로운 협력체계 구체화 목표.
캐나다와 유럽연합(EU)이 무역과 첨단기술, 안보를 아우르는 새로운 동맹 관계를 추진한다. 세계 무역질서가 빠르게 변화하고 핵심 기술과 자원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양측은 기존의 경제협력을 한층 확대해 공동의 성장과 경제안보를 위한 협력 기반을 마련하기로 했다.
마크 카니(Mark Carney) 캐나다 총리는 11월 1일 자신의 엑스(X)를 통해 캐나다와 EU가 오랜 역사와 공통의 가치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위한 동맹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협력이 해외에서 공부하려는 학생과 새로운 발견에 도전하는 연구자, 더 넓은 시장을 찾는 기업가와 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세대는 물론 자녀와 미래 세대가 더 나은 삶을 누리고 번영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앞서 캐나다와 EU는 지난 10월 29일부터 30일까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제21차 캐나다·EU 정상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카니 총리와 안토니우 코스타(António Costa)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장이 참석했다. 양측 정상은 이 자리에서 '미래를 위한 캐나다·EU 동맹(Canada-EU Alliance for the Future)' 출범을 선언하고 경제와 안보, 기술, 인적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디지털 무역부터 AI 연구까지, 협력 범위 넓힌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캐나다와 EU는 20여 개의 새로운 협력 조치를 발표했다. 디지털 무역과 인공지능(AI), 핵심광물, 에너지, 금융, 연구개발, 안보 등 협력 분야도 폭넓게 설정했다. 기존의 자유무역협정을 중심으로 이어온 경제관계를 기술과 산업, 사회 전반으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이다.
캐나다 총리실에 따르면 양측은 디지털 무역협정에 관한 협상을 마무리했다. 전자계약과 디지털 상품·서비스 거래, 국경을 넘나드는 데이터 이동 등에 적용되는 규칙을 정비해 기업들이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기업 간 공정한 경쟁을 위한 협력도 강화한다. 양측 경쟁당국은 국경을 넘어 발생하는 반경쟁적 행위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협정 협상을 마무리했으며, 이를 통해 기업의 공정한 시장 참여와 소비자 보호를 뒷받침할 계획이다.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공동연구를 확대한다. 캐나다는 유럽 고성능컴퓨팅 공동사업(EuroHPC Joint Undertaking)에 참여해 자국 연구자와 기업들이 유럽의 슈퍼컴퓨터 '유피터(JUPITER)' 등을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대규모 연산 능력이 필요한 AI와 첨단 과학기술 연구에서 협력 기회가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학생과 연구자들의 교류를 늘리기 위한 논의도 이어진다. 캐나다는 유럽의 교육·연수 교류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 플러스(Erasmus+)' 참여 확대를 위한 협상에 나서기로 했다. 차기 EU 연구혁신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과의 협력도 확대할 방침이다.
이러한 계획이 구체화되면 캐나다와 유럽의 학생들이 서로 다른 교육환경에서 학업과 연구 경험을 쌓고, 연구자들은 국경을 넘어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핵심광물·에너지 공급망 협력으로 경제안보 강화
캐나다와 EU는 핵심광물과 에너지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핵심광물은 전기차 배터리와 반도체, 재생에너지 설비, 첨단 방위산업 등에 사용되는 필수 자원이다.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공급 의존도를 줄이는 일이 주요국의 경제안보 과제로 떠오르면서 관련 협력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양측은 유럽투자은행(EIB)이 캐나다의 핵심광물 관련 사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자원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캐나다의 자원과 유럽의 산업·금융 역량을 연결해 안정적인 공급 기반을 확보하려는 구상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캐나다산 액화천연가스(LNG)의 유럽 수출 확대 가능성을 검토하기로 했다. 아울러 캐나다와 유럽을 연결하는 새로운 대서양 횡단 데이터 케이블 구축 방안도 논의할 예정이다. 에너지와 디지털 인프라를 함께 강화해 경제적 연결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안보 협력도 구체적인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캐나다 총리실은 EU의 유럽안보행동(SAFE) 프로그램과 연계해 몬트리올 소재 기업 갈비온(Galvion)이 라트비아에 군용 헬멧을 공급하는 4,400만 달러 이상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측은 유럽의 보안 위성통신망 사업인 'IRIS²'와 관련해서도 협력을 추진한다. 정부와 국방기관, 긴급구조기관 등이 위기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통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기후재난 대응 역시 협력 대상에 포함됐다. 캐나다 항공기 제조업체 드하빌랜드(De Havilland)의 산불 진화용 항공기 생산 확대를 위해 최대 25억 캐나다달러 규모의 금융지원이 추진된다. 산불이 대형화하고 피해 범위가 넓어지는 상황에서 재난 대응 역량을 높이는 동시에 관련 산업의 생산 기반도 강화하려는 계획이다.
캐나다, EU 정식 가입 없이 더 긴밀한 관계 모색
이번 정상회의에서 관심을 모은 또 다른 의제는 캐나다와 EU의 관계를 어느 수준까지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다.
카니 총리는 캐나다가 EU의 정식 회원국이 되지 않으면서도 가능한 한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캐나다가 EU의 첫 번째 '준회원국(Associate Member)'이 되는 방안도 거론됐다.
다만 준회원국은 현재 EU 조약에 명확하게 규정된 공식 회원국 지위가 아니다. EU 내부에서도 해당 명칭과 제도적 의미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이번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는 준회원국이라는 표현이 포함되지 않았다.
양측은 정식 회원국 가입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서도 기존보다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키기로 하고, 2027년 캐나다·EU 정상회의까지 새로운 협력체계의 범위와 내용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로이터통신과 AP통신 등 해외 언론은 이러한 움직임이 미국 중심의 통상질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적·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려는 양측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캐나다는 미국에 대한 높은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새로운 시장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EU 역시 에너지와 핵심광물, 첨단기술 공급망을 다변화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관세정책과 국제 통상환경의 변화가 양측의 협력 확대를 촉진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새로운 관계가 실제 제도로 자리 잡기까지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EU 회원국들의 입장을 조율해야 하고,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범위와 제도적 권한도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의 가치에서 경제·기술·인적 교류로
캐나다와 EU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주의,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 등 양측이 공유해 온 가치를 재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경제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후변화와 기술 전환 등 국제사회가 직면한 과제에도 함께 대응하기로 했다.
캐나다 총리실에 따르면 EU는 2025년 기준 상품과 서비스 교역 규모가 약 1,780억 캐나다달러에 이르는 캐나다의 두 번째로 큰 교역 상대다. 양측은 이미 포괄적경제무역협정(CETA)을 통해 긴밀한 경제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번 동맹을 계기로 협력 범위를 더욱 넓혀갈 계획이다.
이번 정상회의는 캐나다와 EU가 기존의 무역 중심 관계에서 벗어나 기술과 자원, 안보, 교육과 연구까지 연결하는 새로운 협력 방식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학생과 연구자, 기업의 활동 기회를 넓히겠다는 구상은 정부 간 합의가 실제 시민들의 삶과 산업 현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번에 발표된 협력 조치 가운데 상당수는 앞으로 추가 협상과 제도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양측이 제시한 미래 동맹이 구체적인 경제적 성과와 교류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향후 이행 과정에서 확인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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