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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세월 품은 왕실의 공간…웨스트민스터 사원 ‘레이디 채플’

  • 윤재훈 기자
  • 입력 2026.10.0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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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헨리 7세가 세운 왕실 묘역, 정교하게 펼쳐진 부채꼴 천장으로 후기 중세 건축의 정수
  •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1세,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등 영국 왕실의 역사 한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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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4일 오후 공식 X 계정을 통해 헨리 7세가 건립한 ‘레이디 채플(Lady Chapel)’의 내부 모습을 소개했다. 정교한 부채꼴 천장으로 유명한 이곳에는 헨리 7세와 엘리자베스 1세, 메리 1세,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등 15명의 왕과 여왕이 안장돼 있다. [사진=Westminster Abbey X]


화려한 석조 천장이 머리 위로 끝없이 펼쳐지고, 양쪽으로는 형형색색의 문장 깃발이 늘어서 있다.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레이디 채플(Lady Chapel)’이다. 500여 년 전 헨리 7세가 자신의 묘소를 위해 세운 이곳에는 영국 왕실의 오랜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4일 오후 공식 X 계정을 통해 레이디 채플의 내부 모습을 소개했다. 게시물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에 등장하는 왕가의 영광을 언급한 구절과 함께 헨리 7세를 비롯해 엘리자베스 1세, 메리 1세,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등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는 설명이 담겼다.


레이디 채플은 튜더 왕조를 연 헨리 7세의 명으로 1503년 건립이 시작됐다. 헨리 7세가 세상을 떠난 뒤인 1516년 완공됐으며, 당시에도 뛰어난 건축미로 이름을 알렸다. 16세기 영국의 골동학자 존 릴런드(John Leland)는 이곳을 ‘세계의 경이(the wonder of the world)’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천장이다. 돌로 만든 부채가 연이어 펼쳐지는 듯한 ‘팬 볼트(fan vault)’가 천장 전체를 채우고 있다. 복잡하면서도 일정한 패턴으로 이어지는 석조 구조는 레이디 채플을 대표하는 특징이자 후기 중세 영국 건축의 뛰어난 사례로 꼽힌다.


채플 동쪽에는 헨리 7세와 왕비 엘리자베스 오브 요크의 무덤이 자리한다. 두 사람의 기념묘에 놓인 금동 와상은 피렌체 출신 르네상스 조각가 피에트로 토리지아노가 제작했다. 두 사람의 유해는 기념묘 아래 묘실에 안장돼 있으며 제임스 1세 역시 같은 묘실에 묻혀 있다.


레이디 채플에 안장된 왕과 여왕은 모두 15명이다. 영국사에서 서로 다른 종교적 길을 걸었던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도 이곳에 함께 잠들어 있다. 메리 1세가 1558년 먼저 안장됐고, 1603년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1세도 같은 묘실에 묻혔다.


채플 반대편에는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무덤이 자리한다. 1587년 처형된 그는 처음에는 피터버러 대성당에 묻혔지만, 아들 제임스 1세의 명으로 1612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옮겨졌다. 생전 영국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했던 엘리자베스 1세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가 수백 년이 흐른 지금 같은 채플의 서로 마주 보는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에드워드 6세와 찰스 2세,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 앤 여왕 등도 레이디 채플에 안장돼 있다. 1760년 세상을 떠난 조지 2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마지막 영국 군주다. 그는 레이디 채플 중앙 통로 아래에 마련된 하노버 왕가 묘실에 왕비 캐롤라인과 함께 안장됐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전체에는 모두 30명의 왕과 여왕이 묻혀 있다. 11세기 에드워드 참회왕부터 여러 시대의 군주들이 이곳에 잠들었으며, 헨리 7세가 레이디 채플을 세운 이후에는 이 공간이 왕실 묘역의 중요한 중심지가 됐다.


레이디 채플의 역사는 무덤에만 머물지 않는다. 18세기부터 영국의 기사단인 바스 훈장(Order of the Bath)과 관련된 의식이 이곳에서 이어져 왔다. 채플 양쪽에 걸린 화려한 문장 깃발은 이러한 전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풍경이다.


수백 년 전 세상을 떠난 군주들의 무덤과 정교한 중세 건축,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왕실의 전통이 한 공간에 함께 존재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레이디 채플은 영국 왕실의 역사가 여러 세대를 거쳐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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