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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돋보기] 명문대는 ‘명문 인격’을 보장하는가…코넬대 성폭행 의혹이 던진 교육의 질문

  • 윤재훈 기자
  • 입력 2026.10.0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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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넬대 여학생, 2024년 사교클럽에서 학생 7명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주장, 뉴욕주 특별검사 수사
  • 대학 자체 조사 뒤 퇴학·정학 등 징계했지만 초기 대응과 수사자료 전달 과정 놓고 논란 확산
  • 코넬대 조사서 학부 여성 35% ‘비동의 성적 접촉 경험’ 응답, 지식 넘어 존중·책임 가르치는 교육 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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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Ai]

 

세계적인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인격까지 증명할 수 있을까.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 코넬대학교에서 불거진 집단 성폭행 의혹이 미국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건의 진위와 형사책임은 앞으로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지만, 논란은 이미 한 대학에서 발생한 성폭력 의혹을 넘어 대학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교육의 본질에 대한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CNN과 ABC뉴스, CBS뉴스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사건은 2024년 10월 19일 코넬대 치파이(Chi Phi) 사교클럽 건물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20세의 코넬대 2학년 여학생은 술과 케타민 등을 섭취한 상태에서 남학생 7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들에 대한 형사 유죄 판결은 물론 형사 기소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관련 내용은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의 진술과 민사소송 등을 토대로 제기된 ‘의혹’으로 봐야 한다.


사건이 다시 주목받은 것은 당시 수사와 대학의 대응 과정을 둘러싼 새로운 사실들이 알려지면서다.


CNN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은 사건 이후 코넬대 경찰에 자신이 심하게 취해 의사결정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으며 일부 성적 행위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이후 별도의 경찰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보다 명확하게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톰킨스카운티 지방검찰은 당시 이 인터뷰 녹취록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학 측은 경찰이 수사 정보를 검찰에 전달하는 절차를 따랐으며 관련 조사 정보를 공유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당시 지방검찰은 대학으로부터 스냅챗 메시지와 6쪽 분량의 조사 보고서 등을 전달받았지만 보다 구체적인 피해 주장 등이 담긴 인터뷰 녹취록은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설명이 엇갈리면서 사건 처리 과정 자체가 새로운 조사 대상이 됐다.


결국 뉴욕주가 직접 나섰다.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는 10월 1일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을 이 사건의 특별검사로 임명했다. 제임스 법무장관은 “범죄를 신고했을 때 그것이 완전하고 공정하게 조사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든 뉴욕 주민이 알 수 있어야 한다”며 사실과 법률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코넬대 역시 사건 처리 전반에 대한 외부 독립조사에 동의했다. 호컬 주지사는 대학의 성폭력 예방과 신고, 대응 시스템에 심각한 의문이 있다며 코넬대가 학생 보호와 정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의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성적은 뛰어나지만 타인을 존중하는 법은 배웠는가


이번 사건이 더욱 큰 파장을 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는 사건이 발생한 곳이 미국을 대표하는 명문대인 코넬대라는 점이다.


그러나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학업 능력과 다른 사람의 존엄을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능력은 같은 것이 아니다.


높은 시험 점수와 뛰어난 지적 능력이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나 도덕적 판단력을 자동으로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다. 명문대의 간판 역시 그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을 보증하는 인증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코넬대가 자체적으로 내놓은 조사 결과는 이 문제를 대학 공동체 전체의 과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코넬대가 2025년 실시한 ‘성폭력 및 관련 위법행위 조사’에서 응답한 학부 여학생 가운데 35%가 재학 중 비동의 성적 접촉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2023년 조사 당시 23%보다 높아진 수치다. 남학생의 경우 8%가 같은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 코넬대 성폭력 태스크포스는 이 결과에 대해 대학이 원하는 수준의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건을 특정 학생들의 일탈만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이유다.


대학은 지식을 가르치는 곳인가, 사람을 교육하는 곳인가


코넬대가 지난해부터 성폭력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해온 대책에서도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대학은 2025년 성폭력 대응 태스크포스를 구성했고 8개월간의 조사와 논의를 거쳐 올해 3월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가 제시한 해법은 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학생 개개인의 행동, 공동체 문화, 대학이라는 기관의 책임을 함께 변화시켜야 한다고 봤다. 특히 성과 성적 건강에 대한 새로운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성적 시민성(sexual citizenship)’에 관한 교육 기회를 확대하며 학생과 리더, 기숙사 관계자 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이는 대학 교육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대학은 오랫동안 더 높은 수준의 지식과 전문성을 가르쳐 왔다. 인공지능과 첨단과학을 배우고, 법과 경제를 연구하며 사회를 이끌 전문 인력을 길러낸다. 그러나 지식을 사용할 사람이 타인의 권리와 존엄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뛰어난 지식과 능력만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기는 어렵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 취약한 상태의 사람을 이용하지 않는 것, 친구나 집단의 잘못된 행동에 동조하지 않는 것, 목격했을 때 침묵하지 않는 것 역시 교육해야 할 시민의 기본적인 책임이다.


코넬대 태스크포스가 ‘개인의 행동 변화’와 함께 ‘공동체 문화’와 ‘제도적 책임’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폭력을 몇몇 개인의 문제로만 남겨두지 않고 이를 용인하거나 방관할 수 있는 환경까지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코넬대 내부에서도 변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코넬대 교수진 일부는 공개서한을 통해 성폭력이 피해자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동의(consent)와 시민성에 관한 지식과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라는 대학 태스크포스의 권고를 지지했다.


뉴욕주 의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 하원은 코넬대 사건을 계기로 현행 성폭력 관련 법률을 검토하는 별도의 실무그룹을 구성하고 올해 말까지 입법 권고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사건의 형사적 진실은 이제 특별검사의 수사를 통해 다시 가려지게 된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 특정 학생들의 범죄 여부를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수사 결과와 별개로 이번 사건이 교육계에 남긴 질문은 분명하다.


어떤 대학에 입학했느냐가 그 사람의 지적 성취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의 도덕성과 인격까지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교육은 지식에서 끝날 수 없다. 자신의 자유만큼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며, 힘없는 사람의 존엄을 침해하지 않는 기준을 배우는 과정까지 포함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대학을 만드는 기준 역시 연구실적과 졸업생의 사회적 성공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얼마나 뛰어난 학생을 선발하느냐 못지않게, 그 학생들이 어떤 사람으로 사회에 나가도록 교육하느냐가 대학의 또 다른 책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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