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 연안의 주요 거점을 잇따라 장악하면서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둘러싼 해상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예멘이 새로운 전선으로 부상하면서 국제 원유 공급과 해상 물류에도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후티는 지난 10일 예멘 서부 홍해 연안의 전략적 항구도시 모카(Mocha)를 장악한 데 이어 11일 바브엘만데브 해협 입구에 위치한 마윤섬(Mayun Island·페림섬)에도 진입했다. 예멘 정부 관계자들은 후티가 홍해 연안의 마지막 주요 거점들을 차례로 확보하고 바브엘만데브 해협 인근의 두밥(Dhubab)까지 진출했다고 밝혔다.
모카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 약 60㎞ 떨어진 곳으로, 예멘 서부 해안과 타이즈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와 가까운 전략적 위치에 있다. 후티가 모카를 확보하면서 해협 남쪽으로 병력과 장비를 이동시키고 선박을 감시하거나 공격할 수 있는 선택지가 확대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홍해와 아덴만을 연결하는 해상 요충지다. 이곳을 통과하는 선박은 홍해를 거쳐 수에즈 운하로 이어지는 항로를 이용할 수 있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국제 해상교통의 핵심 통로로 평가된다. 로이터는 현재 상황에서 바브엘만데브가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약 7%, 전체 무역의 약 12%와 관련된 주요 해상 병목 지점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번 사태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미 이란과 미국의 충돌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선박 운항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또 다른 주요 항로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9월 10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7척으로, 전쟁 이전 하루 평균 약 125척에 크게 못 미쳤다. 같은 날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는 26척이 통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홍해 항로의 중요성이 커진 상황이었다. 호르무즈 해협의 운항 차질을 피하기 위해 일부 원유 수출을 홍해 쪽으로 우회시키고 있었지만, 후티의 모카와 마윤섬 장악으로 이 대체 항로마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후티의 공세는 지난 몇 주간 이어진 충돌의 연장선에 있다. 지난 8일 후티는 사우디아라비아 남부의 아브하, 자잔, 나지란, 카미스무샤이트 등 지역을 대상으로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감행했다. 사우디 당국은 민간인 73명이 다쳤다고 밝혔으며, 일부 에너지 시설과 기반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후 사우디군의 후티 거점 공습이 이어졌지만, 모카를 둘러싼 방어전에서는 사우디의 직접적인 공중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미국과 사우디, 예멘 정부 사이에 책임 공방도 나타나고 있다.
CNN 보도에 따르면 예멘 정부군 관계자들은 모카 방어를 위해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에 상황의 심각성을 전달했으며 사우디의 공중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안내받았지만 실제 지원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CNN은 이 같은 현장 관계자들의 주장을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고 전했다.
미국의 역할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로이터와 CNN에 따르면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후티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행동을 요청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공습에는 나서지 않는 대신 정보 및 표적 관련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을 택했다. 미국 측은 홍해의 항행 자유 등 핵심 국가안보 이익을 보호하면서 지역 파트너들이 지역 안보 문제를 주도적으로 관리하도록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CNN은 미국 군사 고문 100명 이상이 사우디에 배치돼 후티에 대한 정보와 표적 설정을 지원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관련 지원이 확대됐다고 보도했다. 다만 미국 인력이 사우디 전투기의 직접적인 공습에 참여하거나 공중급유를 지원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예멘 정부군의 방어 실패를 두고는 내부 분열과 지휘체계의 문제도 지적된다. 일부 서방 및 지역 소식통은 정부군의 병력 명부에 실제 전투력이 없는 이른바 ‘유령 병력’이 포함돼 있었으며, 실제 병력이 서류상 규모의 일부에 불과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또 예멘 내 반후티 세력 사이의 정치적·군사적 통합이 부족해 효과적인 지휘통제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아울러 아랍에미리트(UAE)가 지난 1월 예멘에 남아 있던 병력을 철수한 뒤 사우디가 해당 지역의 공백을 충분히 메우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후티의 공세에 대한 대응 역량이 약화됐다는 분석이다.
후티 측의 다음 움직임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동부 진출 가능성이 거론된다. 국제 안보 전문가들은 후티가 모카와 마윤섬을 확보한 데 이어 바브엘만데브 일대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경우 해협을 직접 봉쇄하지 않더라도 포격과 드론, 무인정 등을 활용해 선박 운항에 상당한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다만 후티의 이번 진격이 곧바로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완전한 봉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알자지라는 후티가 이미 2023년부터 홍해 선박을 공격하며 해상 운송에 영향을 미쳐왔으며, 이번 영토 확장은 기존의 해상 위협 능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성격이 있다고 평가했다.
국제 유가에도 이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10일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107.63달러,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02.48달러로 각각 100달러를 넘어섰으며, 중동의 해상 운송 차질과 후티의 모카 장악 등이 공급 불안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가 12일 이라크에서 발생한 드론 공격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할 수 있는 동서 송유관(East-West Pipeline)을 일시적으로 가동 중단하면서 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우려가 한층 커졌다. 이 송유관의 운송 능력은 하루 400만~500만 배럴 수준으로 전 세계 공급량의 약 4~5%에 해당하는 것으로 로이터가 보도했다.
결국 이번 후티의 급속한 진격은 예멘 내전의 전선 변화에 그치지 않고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이라는 두 개의 핵심 해상 교통로가 동시에 불안정해지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후티가 홍해에서 확보한 군사적 거점을 어떻게 활용할지, 사우디와 미국이 어느 수준까지 대응에 나설지가 중동 정세와 국제 에너지 시장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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