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9년 이진법 연산 체계화, 1703년 논문 발표, 현대 컴퓨터 발전의 수학적 기반
- 중국 『주역』과의 흥미로운 연결부터 인공지능까지, 두 숫자에 담긴 과학기술의 역사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AI)의 세계에는 공통된 원리가 숨어 있다. 사진을 저장하고 영상을 재생하며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복잡한 기술도 그 바탕을 들여다보면 단 두 개의 숫자와 만난다. 바로 0과 1이다.
0과 1만으로 모든 수를 표현하는 이진법은 오늘날 디지털 기술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수학적 원리이다. 이 단순한 체계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17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다.
과학사 전문 X 계정 '피직스 인 히스토리(Physics in History)'는 11월 2일 라이프니츠가 1679년 이진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게시물은 0과 1만을 사용하는 수 체계가 오늘날 컴퓨터와 디지털 기술의 중요한 기반이 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라이프니츠는 철학과 수학, 논리학, 물리학 등 여러 학문을 넘나들며 활동한 학자였다. 특히 아이작 뉴턴과는 별개로 미적분학을 발전시킨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업적 가운데에는 수백 년 뒤 디지털 시대를 여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된 또 하나의 연구가 있다. 바로 이진법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숫자는 0부터 9까지 열 개의 숫자로 수를 표현하는 십진법을 따른다. 9 다음에는 자릿수를 올려 10이 된다. 반면 이진법은 0과 1만 사용한다. 1 다음의 수인 2는 '10'으로, 3은 '11', 4는 '100', 5는 '101'로 나타낸다.
처음에는 숫자를 표현하는 방식이 오히려 복잡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진법은 두 가지 숫자만으로 모든 자연수를 나타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자릿수가 늘어날수록 표현할 수 있는 수의 범위도 커진다.
라이프니츠는 여기에 주목했다. 그는 단순히 숫자를 다르게 적는 방법을 넘어 0과 1만으로 실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연구했다.
미국수학협회(MAA)의 과학사 자료에 따르면 라이프니츠는 1679년 이진법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1703년에는 '이진 산술에 관한 설명(Explication de l'Arithmétique Binaire)'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이진법을 이용해 수를 표현하는 방법과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수행하는 원리를 설명했다.
복잡한 수를 단 두 개의 숫자로 표현하고 계산할 수 있다는 사실은 라이프니츠에게 수학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중요한 주제였다. 당시에는 철학과 수학의 영역에서 이뤄진 연구였지만, 훗날 기계가 계산을 수행하는 원리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의미 있는 기반이 됐다.
그렇다고 이진법을 라이프니츠가 처음 발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수를 두 배로 늘리고 필요한 값을 더하는 계산 방식은 고대 이집트에서도 사용됐으며, 17세기 초에는 토머스 해리엇과 존 네이피어 등도 이진법과 관련된 수학적 방법을 탐구했다.
라이프니츠의 업적은 이러한 수학적 아이디어를 독립적으로 발전시키고, 0과 1을 이용한 계산을 체계적인 산술 방법으로 정리했다는 데 있다.
그의 연구에는 동양의 고전인 『주역(周易)』과의 흥미로운 인연도 등장한다.
라이프니츠는 중국에서 활동하던 예수회 선교사 요아힘 부베(Joachim Bouvet)와 교류하면서 『주역』의 64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주역』에서는 이어진 선과 끊어진 선을 조합해 다양한 상태와 변화를 표현한다. 라이프니츠는 이 두 가지 선의 조합이 0과 1을 이용해 수를 나타내는 이진법과 닮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1703년 발표한 논문에서도 중국의 고대 도형과 이진법의 관계를 언급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발전한 사유 체계 사이에 수학적으로 유사한 구조가 존재한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다만 라이프니츠가 『주역』을 보고 이진법을 처음 만들었다는 설명은 정확하지 않다. 그는 『주역』의 괘 배열을 자세히 접하기 이전부터 이진법을 연구하고 있었으며, 이후 두 체계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그 의미를 탐구했다.
이처럼 17세기에 체계화된 이진법이 오늘날의 컴퓨터로 이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이 수학과 논리학, 전기공학 분야에서 여러 학자의 연구가 축적됐다.
19세기 영국의 수학자 조지 불(George Boole)은 참과 거짓의 논리적 관계를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불 대수를 발전시켰다. 이는 복잡한 논리적 판단을 수학적 연산으로 다룰 수 있게 한 중요한 성과였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이러한 논리 연산을 전기회로로 구현하는 기술이 발전했다. 전기적 신호의 두 상태를 0과 1에 대응시키면 회로를 통해 계산과 판단을 수행할 수 있다는 원리가 실제 기술로 이어진 것이다.
현대 컴퓨터의 반도체 회로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수많은 트랜지스터가 전기적 상태를 제어하면서 정보를 저장하고 계산을 수행한다. 우리가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가장 작은 정보 단위인 비트(bit) 역시 0 또는 1의 값을 갖는다.
여러 비트가 모이면 숫자와 문자뿐 아니라 사진과 음악, 영상까지 다양한 정보를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카메라가 받아들인 빛의 정보가 디지털 데이터로 바뀐다. 사진 속 색과 밝기 등의 정보는 수많은 비트의 조합으로 저장되고, 화면에 사진을 표시할 때 다시 해석된다.
우리가 주고받는 문자메시지나 인터넷 영상, 금융거래 정보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이는 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디지털 장치 내부에서는 이진수로 표현된 데이터가 처리된다.
최근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도 이러한 컴퓨터 기술의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
생성형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복잡한 수학적 연산을 수행해 문장을 만들거나 이미지를 분석한다. 인공지능의 알고리즘과 신경망 구조가 라이프니츠의 이진법 연구에서 직접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를 실행하는 컴퓨터와 반도체 시스템은 이진 데이터 표현과 전자회로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수백 년 전 수학자가 탐구했던 단순한 숫자의 조합이 오늘날 첨단 기술을 움직이는 중요한 원리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현대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발전을 라이프니츠 한 사람의 업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수학과 논리학, 전자공학, 컴퓨터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연구자의 발견과 기술적 성과가 축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의 이진법 연구는 그 긴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2024년 출간된 『수학적 실천의 역사와 철학 핸드북(Handbook of the History and Philosophy of Mathematical Practice)』에서도 라이프니츠의 이진법 연구를 수 체계의 발전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례로 다루고 있다. 해당 연구는 그가 1670년대 중후반부터 이진법을 독립적으로 발전시켰으며, 수의 성질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진법을 연구했다고 설명한다.
1679년 라이프니츠가 탐구했던 0과 1의 세계는 당시에는 수학적 가능성을 살피는 연구였다. 그러나 이후 수학과 공학이 발전하면서 이 단순한 원리는 컴퓨터와 인터넷, 인공지능으로 이어지는 디지털 기술의 중요한 기반이 됐다.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과 첨단 반도체가 산업과 일상을 빠르게 바꾸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 변화의 바탕에 347년 전 한 수학자가 깊이 탐구했던 두 개의 숫자가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거대한 기술의 발전이 언제나 복잡한 발견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누구나 알고 있는 단순한 원리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가능성을 끝까지 탐구하는 데서 변화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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