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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으로 본 세상 ②] 미생물이 빚어내는 예술, 발효의 미학

  • 윤슬 기자
  • 입력 2026.02.15 0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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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의 제빵소, 조리대 위에 놓인 밀가루 반죽은 정지된 사물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인류가 발견한 가장 정교한 생화학적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밀가루와 물, 소금, 그리고 살아있는 유기체인 효모가 만나는 순간, 

무생물의 가루는 생명력을 얻어 팽창하고 스스로의 형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1부에서 빵의 인류학적 발자취를 따라갔다면 

2부에서는 현미경 아래에서 펼쳐지는 미생물들의 경이로운 협업과 

그들이 빚어내는 과학적 미학을 심층적으로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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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루텐 골조(Gluten Network/Structure). [Photo by AI]

 

단백질의 견고한 연대, 글루텐이라는 골조의 탄생


빵의 구조를 결정짓는 첫 번째 과학적 사건은 수화(水和, hydration)현상에서 시작된다. 밀가루 속에 잠자고 있던 두 가지 핵심 단백질인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은 물을 만나는 순간 서로를 탐색하며 결합하기 시작한다. 이때 제빵사의 물리적인 힘, 

 즉 치대는 행위가 가해지면 이 단백질 가닥들은 복잡하게 뒤엉키며 탄성과 점성을 동시에 지닌 거대한 그물망 구조를 형성한다. 이것이 바로 빵의 골격인 글루텐이다.


과학적 관점에서 글루텐은 단순히 끈적이는 물질이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가두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천연 고무 풍선들의 집합체와 같다. 글리아딘은 반죽에 유연성을 부여해 늘어날 수 있게 하고 글루테닌은 단단한 사슬 구조를 형성해 반죽이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오려는 힘을 만든다.

 

 이 두 단백질이 이루는 점탄성의 균형은 빵의 식감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변수가 된다. 견고하게 직조된 글루텐 그물망은 이후 효모가 뿜어낼 기체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보관소 역할을 수행하며, 오븐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빵이 무너지지 않고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건축학적 지지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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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풀어 오르는 효모. [Photo by AI]

 

보이지 않는 거장, 효모가 주도하는 생명의 호흡


반죽이라는 무대에 본격적으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주역은 (효모)다.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지애(Saccharomyces cerevisiae)라는 학명의 이 단세포 미생물은 반죽 속의 당분을 먹이 삼아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대사 과정을 시작한다. 

 

이것이 우리가 발효라고 부르는 연금술의 실체다. 효모가 내뱉는 미세한 기체들은 글루텐 그물망 사이에 갇히며 반죽을 서서히 부풀린다. 이 과정은 단순히 부피를 키우는 행위를 넘어, 반죽 내부의 화학적 조성을 완전히 재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효모의 활동은 맛의 깊이를 결정하는 '아로마의 원천'이 된다.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에탄올과 다양한 유기산들은 밀가루 특유의 풋내를 지우고, 우리가 갓 구운 빵에서 느끼는 구수하고 복합적인 향미 화합물을 생성한다. 

 

"온도가 너무 낮으면 효모는 동면에 들어가고 

너무 높으면 사멸해 버리기에 제빵사는 마치 생명체를 돌보듯, 

온도와 습도를 정밀하게 제어해야 한다." 

 

발효실의 습도와 온도는 단순한 환경 수치가 아니라, 미생물이라는 예술가가 최상의 작품을 조각하기 위해 필요한 무대 장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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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븐 스프링. [Photo by AI]

 

'오븐 스프링(Oven Spring)', 팽창과 고착이 이루는 절정의 순간


발효를 마친 반죽이 뜨거운 오븐으로 진입하는 순간 제빵 과학의 화룡점정이라 불리는 오븐 스프링이 일어난다. 열기를 받은 반죽 내부의 기체들은 샤를의 법칙에 따라 부피가 급격히 팽창하며 반죽 속의 수분은 수증기로 변해 내부 압력을 극대화한다. 이때 "빵은 생애 가장 역동적인 성장을 경험하며 최종적인 부피를 형성"한다.


동시에 60도 부근에서 효모는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낸 뒤 사멸하고, 반죽 속의 전분은 호화 과정을 거쳐 굳어지기 시작한다. 겉면에서는 마이야르 반응과 카라멜화 반응이 일어나며 향기로운 갈색 껍질을 형성하고, 내부는 열의 대류 현상을 통해 수많은 기공이 고착된다. 

 

"우리가 빵을 잘랐을 때 마주하는 불규칙한 구멍들은 사실 

미생물들이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호흡했던 흔적이자, 

물리적 압력을 견뎌낸 과학적 승리의 훈장이다. 


이 기공의 크기와 분포에 따라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향의 발산 속도가 결정된다."


구멍의 예술, 비어있음으로 완성되는 풍요


전문가들은 빵의 내상을 일컬어 '구멍의 예술'이라 부른다. 빵 내부의 빈 공간은 단순히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맛의 성분을 가두고 혀의 돌기에 닿는 면적을 조절하는 공학적 설계의 결과물이다. 


"기공이 조밀하고 고른 식빵은 부드러운 우아함을 선사하고, 

불규칙하고 큼직한 기공을 가진 바게트나 사워도우는 

거친 야성미와 깊은 산미를 뿜어낸다."


이 구멍들은 또한 "열 전달의 효율적인 통로가 되어 빵의 속살을 완벽하게 익히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한다.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조각해낸 이 미세한 공간들이 모여 우리는 비로소 빵이라는 입체적인 미식의 결정체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빵을 먹는다는 것은 결국, 미생물이 변주해낸 단백질의 구조물과 

그들이 남긴 공기의 흔적을 오감으로 감상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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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 한 조각의 이야기. [Photo by AI]

 

인간의 인내와 미생물의 생명력이 빚은 이중주


결국 한 덩이의 빵은 인간의 의도와 미생물의 자율성이 결합하여 탄생하는 공동의 저작물이다. 

 

"제빵사는 최적의 재료를 배합하고 환경을 조성할 뿐, 

실제 반죽에 숨결을 불어넣고 맛의 지도를 그리는 것은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들의 몫이다." 

 

수천 년 전 인류가 우연히 발견한 이 발효의 신비는 현대에 이르러 정밀한 생화학의 옷을 입었으나, 그 본질적인 경이로움은 여전하다. 우리가 빵의 부드러운 속살을 음미하며 느끼는 만족감은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온 인류의 지혜가 미생물이라는 작은 생명의 손을 빌려 완성해낸,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향기로운 과학의 결과물이다. 

 

빵 한 조각 속의 수많은 기공은 인류 문명이 생명의 원리를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어온 과정을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지표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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