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상반기부터 한국에서는 수학여행과 현장체험학습 도중 안전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교사에게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뀔 전망이다. 교육부는 교사 법률지원 체계 강화와 보조인력 확대 등을 포함한 ‘현장체험학습 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위축된 체험교육 정상화에 나섰다.
이번 조치는 최근 수년간 국내 교원사회에서 누적돼 온 “과도한 책임 부담” 문제를 제도적으로 완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실제로 서울·경기 등 주요 지역 초등학교의 수련회·수학여행 실시율이 한 자릿수대로 떨어질 만큼 현장체험학습은 급격히 위축돼 왔다.
무엇보다 이번 논의는 학생의 안전과 인권 못지않게 교사의 인권 역시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교사가 형사 고발과 민사소송, 과도한 비난까지 홀로 감당해야 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교육활동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위험을 교사 개인에게 전가하는 구조는 결국 교사들의 교육 의욕을 위축시키고, 학생들의 다양한 체험 기회까지 줄어들게 만든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 해외 주요국들은 학생 보호와 함께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 보장 역시 중요한 가치로 보고 있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일정 수준의 활동성과 이동, 체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만큼, 예측 불가능한 모든 사고를 교사의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학교 현장체험학습 사고는 주마다 법체계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교사가 학교 규정과 안전지침을 충실히 이행했다면 개인 형사책임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드물다. 다만 중대한 과실이나 감독 의무 위반이 인정될 경우 학교와 교육청, 교사 개인까지 민사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미국 학교들은 현장학습 전 위험성 평가서 작성, 학부모 동의서 확보, 응급대응 계획 수립 등을 매우 세밀하게 운영한다.
영국 역시 학교의 ‘주의 의무(duty of care)’를 강조하면서도, 교사가 모든 사고 결과에 무한 책임을 지는 구조는 아니다. 영국 교육당국은 오히려 “사고 가능성 때문에 야외교육을 과도하게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현장체험활동은 학생 성장에 필수적이라는 교육 철학이 강하기 때문이다. 대신 학교는 사전 위험평가와 전문 안전교육을 체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일본은 한국과 가장 유사한 고민을 안고 있는 국가로 꼽힌다. 일본 역시 학교 행사 중 사고 발생 시 교사 책임 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되면서 교육 현장의 위축 현상이 반복돼 왔다. 그러나 일본은 체험학습 자체를 축소하기보다 지방자치단체와 학교가 공동으로 안전관리 매뉴얼을 강화하고, 교사 외 보조인력과 지역 자원봉사자를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대응해 왔다. 특히 재난 대응 교육과 응급훈련을 정례화해 현장 대응 역량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호주와 캐나다 등도 현장체험학습 운영 시 교사 개인보다는 학교 시스템 차원의 책임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전문 안전인력 배치, 보험 의무화, 활동별 위험등급 분류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위험도가 높은 야외활동의 경우 전문기관 위탁 운영이 일반화돼 있다.
한국 교육부가 이번에 발표한 대책 역시 해외 사례와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교사의 고의·중과실이 없는 경우 법적 책임 부담을 줄이는 대신, 교육청 차원의 전담변호사 지원, 보조인력 확대, 사전 안전점검 강화 등을 병행하는 방식이다. 특히 “학생 50명당 1명” 수준이던 보조인력 기준을 “학급당 1명”으로 확대하고, 응급구호 역량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은 해외 안전관리 모델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학부모 우려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일부 교원단체는 “교사의 완전 면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교육부는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 보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해외 역시 대부분 ‘무조건 면책’보다는 ‘합리적 주의 의무를 다했는가’를 중심으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한국도 비슷한 절충 모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결국 핵심은 “면책” 자체보다 “안전 시스템의 실질적 강화”에 있다고 지적한다. 교사 개인에게 책임을 과도하게 전가하면 체험학습은 사라지지만, 반대로 안전관리 체계가 부실하면 학생 피해 역시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소풍도 가지 못하는 학교”라는 자조가 나올 정도로 현장체험학습이 위축돼 있다. 학생의 안전과 인권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교육활동을 수행하는 교사의 인권과 교육권 역시 함께 보호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듯 체험교육의 정상화는 단순히 책임을 줄이는 문제를 넘어, 학생과 교사 모두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균형 있는 교육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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