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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제독의 국토기행2] 승평에서 승주목으로, 순천이 전남 동부의 중심이 되다

  • 윤재훈 기자
  • 입력 2026.10.0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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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필자제공]

 

필자가 나온 모교 교가에 “승평(昇平)은 정든 내 고장”이라는 가사가 나오는 것처럼, 승평은 순천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승평은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처음 나타난다. 승평은 글자 그대로 나라와 고을이 안정되고 태평한 세상을 뜻한다. 신라가 전국의 지명을 정비하며 붙인 이 이름에는 지역의 안녕과 번영을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었다.

 

고려 시대를 거치며 승주와 승평으로 불리던 이 지역은 충선왕 즉위년(1309년)에 ‘승주목(昇州牧)’으로 승격되었다. 이는 단순한 지명 변경을 넘어 승주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전주와 나주가 중심이었던 전라도에서 승주가 중요한 거점으로 부상한 것이다. 당시 경상도의 경주·진주·상주·안동, 충청도의 충주·청주·공주 등과 함께 전국의 주요 지방 거점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1년 뒤 전국의 행정구역 등급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승주목은 ‘순천부(順天府)’로 개편되면서 목(牧)이라는 행정 지위는 내려놓게 되었다. 대신 이때부터 ‘순천’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다.

 

‘승평’이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염원이었고 승주의 다른 이름이었다면, ‘순천(順天)’은 하늘의 뜻과 자연의 질서에 따르는 고을이라는 이상을 담고 있다. ‘천(天)’ 자를 지명에 넣어 고을의 가치와 이상을 표현했다는 점에서도 인상적인 이름이다. 이러한 지역적 전통은 조선 시대에도 이어졌다. 태종 13년(1413), 순천은 순천도호부로 재편되며 전라도 동부의 중심 도시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2004년 해군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 친구가 “특이한 직업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잘됐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래서 나는 “순천은 전라좌수영 담당 지역이다. 순천 사람이 해군이 되는 것은 조상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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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필자제공]

 

고려시대에 처음 지어진 유서 깊은 누각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옥천 위를 가로지르던 아름다운 연자루(燕子樓, 순천부 읍성의 남문). 1930년대 시가지 정비 등을 이유로 철거, 1978년에 순천 죽도봉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복원되었다. 


정3품 전라 좌수사의 군사적 지휘를 받던 전라좌수영 관할에는 순천부·낙안군·보성군·광양현·흥양현(고흥) 등 5관이 있었다. 당시 여수는 독자적인 행정 단위가 아닌 순천부 관할이었고, 전라좌수영 본영은 현재의 여수 지역에 설치되어 있었다. 따라서 순천부는 행정적으로 전라좌수영 본영이 자리한 지역과 연결되어 있었던 셈이다. 여수는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독자적인 현이 되면서 순천부의 관할에서 벗어났고, 이후 하나의 도시로 성장했다.

 

오늘날에도 순천은 여수·광양·구례·보성·고흥 등 전남 동부권 여러 지역을 연결하는 중심도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방 소멸의 시대에도 도시의 경쟁력과 정주 여건을 갖춘 전남의 대표적인 거점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다만 임진왜란 당시와 비교하면 달라진 점도 있다. 전라좌수영 관할이 아니던 구례가 오늘날 순천과 같은 동부권에 포함되었고, 낙안군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여수는 하나의 시로 성장했다.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는 순천 출신 칠봉이(유연석)와 여수 출신 조윤진(도희)이 서로 자기 고향이 더 낫다며 자랑을 겨루는 장면이 나온다. 여수와 다른 점이 무엇이 있느냐는 질문에 칠봉이가 내놓은 답은 의외로 “백화점이 있다”라는 것이었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순천에는 백화점이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여수에 한 수 위라는 듯 판정승을 거둔다.

 

그 장면이 문득 떠오른 것은 얼마 전 순천대학교가 국립 의과대학 신설 후보대학으로 선정됐다는 소식 때문이다. 2026년 8월 순천대학교가 국립 의과대학 신설 후보대학으로 선정되었고, 대학 측도 이를 공식 발표했다. 아직 최종적인 의과대학 신설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순천대학교가 후보대학으로 선정된 것은 순천에 큰 변화다.

 

물론 전남 서부 지역, 특히 오랫동안 의과대학 유치를 추진해 온 목포 지역에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순천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결정은 단순히 의과대학 하나를 유치하는 문제가 아니다. 오랫동안 전남 동부권의 중심도시로 성장해 온 순천의 위상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이기도 하다. 〈응답하라 1994〉에서 백화점 하나를 놓고 벌였던 순천과 여수의 작은 자존심 싸움이, 이제는 의과대학이라는 훨씬 큰 이야기로 이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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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필자제공]

 

어렸을 때 내가 기억하는 순천을 지탱하던 주요 산업은 철도였다. 전남 동부의 길목을 지켜온 순천은 근대에 이르러 철길이 교차하는 남부 철도 교통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익산에서 여수까지 전라선이 이어졌고, 진주에서 광주 방향으로는 경전선이 뻗어 있다. 순천역 뒤에는 한 집에 두 가구가 함께 살기도 했던 철도관사가 있었다.

 

아버지가 철도 공무원이었던 우리 가족은 저전동 외갓집에서 살았다. 외갓집이 없었다면 나 역시 순천남초등학교가 아니라 다른 초등학교에 다녔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철도는 당시 순천의 산업이자 교통수단이었고, 철도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공간이기도 했다.

 

그 시절 순천의 철도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단일 행정동인 조곡동 안에 순천역과 동순천역이라는 두 개의 기차역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두 역은 불과 1.7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 사실이 과거 지리 시험 문제로 출제되었다고 한다. 한 동네에 두 개의 기차역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순천의 철도 교통이 얼마나 발달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순천지방철도청은 단순히 순천역을 관리하는 기관이 아니었다. 광주와 전남 지역의 각 역과 사업소를 지휘·감독하고 통제·지원하는 호남권 철도 행정의 중심기관이었다. 지금은 지방철도청과 동순천역이 사라지고 그 자취도 많이 달라졌지만, 어린 시절의 순천을 떠올리면 철길과 기차, 철도관사가 자연스럽게 함께 떠오른다.

 

한 동네에 기차역이 두 곳이나 존재했던 보기 드문 지리적 특수성은 순천이 일찍부터 남도의 교통 거점으로 기능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런데 순천에는 또 하나 ‘두 개’를 가진 것이 있다. 바로 해군 함정의 이름이다.

 

임진왜란의 많은 부분은 여수에서 다루기로 하고, 순천에서는 수군 재건과 노량해전 직전의 순천왜성 전투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다음 편에서는 수군 재건과 순천이 가졌던 2개의 함정 이름을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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