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ture 연구진, 230개 국가·지역 1990~2023년 연간 국제이동 추정. 2000년 연 1,300만 명에서 2023년 3,500만 명으로. 남아시아→중동 이동 급증.
전 세계 국가 간 인구이동 규모가 2000년 이후 20여 년 만에 거의 세 배로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존 국제이동 통계가 5년 또는 10년 단위의 인구자료에 의존하면서 놓쳐왔던 연도별 이동 변화를 딥러닝으로 재구성한 결과다.
국제학술지 Nature에 6월 10일 발표된 ‘딥러닝을 활용한 인류 이주 40년(Deep learning four decades of human migration)’에서 토머스 개스킨(Thomas Gaskin)과 가이 J. 에이블(Guy J. Abel) 연구팀은 전 세계 230개 국가와 지역을 대상으로 1990년부터 2023년까지 국가 간 연간 인구이동을 추정한 새로운 데이터셋을 구축했다.
연구진은 공식 이민통계와 인구센서스, 유엔의 국제이주자 재고 자료, 순이동 추계, 기존 이주흐름 자료, 디지털 기반 이동자료 등을 통합하고 지리·경제·문화·정치적 요인을 반영한 딥러닝 모델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기존 통계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국가 간 이동의 연도별 변화를 복원했다.
2000년 연 1,300만 명→2023년 3,500만 명
연구 결과 전 세계 연간 국제이동 규모는 2000년 약 1,300만 명에서 2023년 약 3,500만 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추정됐다.
20여 년 만에 약 2.7배로 늘어난 셈이다.
이 증가는 단순히 세계 인구가 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연구진이 인구 규모를 고려한 1인당 이동률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비슷한 증가 추세가 나타났다. 즉 세계 인구 증가 속도보다 국가 간 이동이 더 빠르게 늘었다는 의미다.
기존 국제이동 연구에서는 전 세계 이동률이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러한 인식이 상당 부분 기존 데이터의 시간적 해상도가 낮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엔의 국제이주자 자료는 주로 5년 단위, 세계은행 관련 자료는 10년 단위로 집계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방식은 특정 시점에 한 국가에 거주하는 외국 출생자의 숫자는 보여주지만 그들이 정확히 언제 이동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두 시점 사이에 전쟁이나 경제위기, 자연재해가 발생해 대규모 이동이 일어났다가 일부가 다시 돌아갔다면 5년 단위 자료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상당 부분 사라질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이동량을 연 단위로 추정해 이런 문제를 보완했다.
금융위기·코로나 때는 이동 감소
연도별 데이터를 분석하자 국제이동의 흐름을 바꾼 주요 사건들도 나타났다.
전 세계적인 이동 규모는 2000년 이후 전반적으로 증가했지만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일시적으로 감소했다.
이는 인구이동이 장기적인 경제·인구구조 변화뿐 아니라 경제위기와 국경통제 같은 단기적인 충격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연구진은 2000년 이후의 장기적인 국제이동 증가가 특정 전쟁이나 재난과 같은 단발성 충격보다는 경제발전과 인구구조 변화 등 장기적인 요인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분석했다.
남아시아에서 중동으로…2010년 이후 1,900만 명 이동
이번 연구에서 특히 두드러진 변화 가운데 하나는 남아시아에서 중동으로 향하는 노동이동이다.
연구진은 2010년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로 이동한 사람이 모두 약 1,9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연평균 약 135만 명이다.
이는 1990년 이후 전체 기간 동안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 1,360만 명보다 많은 규모다.
특히 2010년 이후 방글라데시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이동한 사람은 연평균 약 30만 명에 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흐름은 국제이동의 중심축이 기존에 주로 연구됐던 중남미-미국 또는 유럽 중심의 이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럽 내부 이동도 크게 증가
유럽은 전체 연구기간 동안 지역 내부 이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연구진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 유럽 내부의 연간 총 이동량은 약 300만 명 수준까지 증가했다.
특히 2000년대와 2010년대 유럽연합(EU)의 동유럽 확대와 솅겐지역 확장은 동유럽에서 서유럽으로의 이동 증가와 함께 나타났다.
1990년 이후 동유럽에서 서유럽으로 이동한 사람은 약 2,000만 명, 연평균 약 60만 명으로 추정됐다.
1991년 소련 해체 직후에는 유럽 내부에서 약 202만 명이 이동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가운데 폴란드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출생자가 약 80만7,000명을 차지했다.
기존 통계가 잘 잡지 못한 ‘글로벌 사우스’ 이동
이번 연구가 특히 의미 있는 부분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기존 국제이동 자료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지역의 이동 흐름을 연도별로 추정했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기존 연간 국제이동 자료가 통계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서구 고소득 국가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국제이동 연구 자체가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국가’의 관점에 편향될 수 있었다.
이번 데이터에서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내부의 이동도 보다 세밀하게 나타났다.
남수단에서는 2013년 이후 내전으로 주변국 에티오피아 등으로 대규모 인구이동이 발생했고, 나이지리아에서도 보코하람의 무장활동이 격화된 시기에 주변국으로의 이동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2013~2014년 사이 나이지리아 출생자 약 7만9,000명이 차드와 니제르, 카메룬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거나 피란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 가운데 약 4만5,000명이 니제르로 이동한 것으로 분석됐다.
2009~2019년 전체로 보면 나이지리아에서 이들 세 국가로 이동한 사람은 약 25만 명으로 추정됐다.
다만 이는 국내에서 이동한 사람은 포함하지 않는 국가 간 국제이동 수치다. 같은 시기 폭력사태로 발생한 국내실향민은 국제기구 추산으로 훨씬 많다.
딥러닝에 18개 변수 입력
연구진은 국제이동을 추정하기 위해 심층 순환신경망(deep recurrent neural network)을 사용했다.
모델에는 국가 간 거리와 경제상황, 문화적 관계, 인구학적 특성, 정치적 상황 등 18개의 설명변수가 활용됐다.
순환신경망은 특정 연도의 조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이동 패턴을 함께 학습해 장기간 지속되는 이동흐름과 단기적인 변화를 동시에 반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여기에 공식 국제이동 통계와 유엔의 이주자 재고자료, 순이동 추계, 일부 유럽의 양자간 이동자료, 페이스북 위치자료 등을 학습자료로 사용했다.
연구진은 하나의 신경망 결과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신경망을 결합한 앙상블 방식도 적용했다.
총 1,500개의 샘플을 활용해 추정값 주변의 불확실성 범위를 함께 제시했다.
AI가 ‘실제 이동을 직접 관측’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결과를 이해할 때 중요한 점이 있다.
딥러닝이 1990년 이후 전 세계 모든 사람의 이동을 직접 관찰하거나 추적한 것은 아니다.
실제 관측된 공식통계와 인구자료, 디지털 자료 등을 학습한 뒤 자료가 없거나 불완전한 국가와 연도의 이동량을 모델이 추정한 것이다.
따라서 3,500만 명과 같은 숫자 역시 전 세계에서 국경을 넘은 사람을 모두 직접 집계한 통계가 아니라 여러 자료와 모델을 이용한 추정치다.
연구진도 이에 따라 국가별 추정치에 불확실성 범위를 함께 제공했다.
아프리카 추정의 불확실성 상대적으로 높아
데이터의 질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었다.
유럽과 다른 고소득 서구 국가에서는 공식 국제이동 자료가 비교적 풍부하기 때문에 모델의 불확실성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등 통계자료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추정 불확실성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지역적 차이를 단순한 모델의 약점으로만 보기보다는 앞으로 어디에서 국제이동 관련 통계를 더 적극적으로 수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불법·미등록 이동은 공식통계 자체에서 포착하기 어렵다는 근본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이민자 수’와 ‘연간 이동자 수’도 구분해야
이번 연구에서 또 하나 주의해야 할 개념은 ‘이주자 재고(migrant stock)’와 ‘이주 흐름(migration flow)’의 차이다.
이주자 재고는 특정 시점에 한 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 출생자의 숫자다.
반면 이번 연구의 핵심인 이주 흐름은 일정 기간 실제로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한 사람의 규모를 의미한다.
따라서 2023년 세계 국제이동 규모 약 3,500만 명이라는 결과를 ‘세계 이민자 전체가 3,500만 명’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해당 연도에 국가 간 이동이 발생한 것으로 연구진이 추정한 연간 이동량이다.
기후·분쟁과 인구이동 연구에도 활용 가능
연 단위 국제이동 데이터가 확보되면서 향후 인구이동의 원인을 분석하는 연구도 보다 정밀해질 수 있을 전망이다.
기존 5년 또는 10년 단위 자료에서는 특정 연도에 발생한 가뭄이나 홍수, 전쟁, 경기침체, 정책 변화와 실제 인구이동 사이의 시간적 관계를 분석하기 어려웠다.
연구진은 이번 데이터가 경제변화와 분쟁, 기후, 정책개혁 등 연도별 자료와 직접 결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기후변화에 따른 인구이동 연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극심한 가뭄이나 홍수, 해수면 상승 같은 환경충격과 이동량의 변화를 연도별로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연구 자체가 ‘기후변화가 국제이동을 얼마나 증가시켰는지’를 측정한 연구는 아니다.
연구진은 기후와 환경위기를 인구이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로 언급했지만, 이번 논문의 핵심은 이동 원인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연도별 국가 간 이동흐름을 일관된 방식으로 추정하는 데이터셋을 구축하는 것이다.
국제이동 정책도 ‘5년 단위 통계’에서 연간 데이터로
이번 연구는 국제이동 정책에서 데이터의 시간적 해상도가 중요하다는 점도 보여준다.
전쟁과 자연재해, 경기침체, 감염병과 같은 사건은 몇 달 또는 1~2년 사이에도 대규모 인구이동을 발생시킬 수 있다.
하지만 5년 단위 통계에서는 이러한 급격한 움직임이 평균화돼 사라질 수 있다.
연구진이 구축한 연간 데이터는 어느 국가에서 어느 국가로 사람들이 이동했는지를 연도별로 추정할 수 있기 때문에 난민·노동시장·주택·교육·사회복지 정책 수립에도 활용 가능성이 있다.
특히 데이터가 부족했던 글로벌 사우스의 이동경로를 포함했다는 점은 국제이동 연구의 지역적 불균형을 완화하는 데도 의미가 있다.
연구진은 연구에 사용한 학습자료와 추정 데이터, 훈련된 신경망과 코드를 모두 공개했다.
외부 연구자들이 추정 방법과 결과를 검증하고 새로운 인구·기후·사회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번 연구는 인공지능이 부족한 사회통계를 단순히 대신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현실 자료를 통합해 기존 통계가 보지 못했던 흐름을 복원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 세계 국제이동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느 지역에서 통계의 사각지대가 가장 큰지를 동시에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번 데이터는 향후 인구정책과 노동시장, 난민·이주정책뿐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른 인간 이동 연구의 중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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