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금성·히아데스성단 배열 분석 결과, 1889년 7월 22일 프랑스 생레미 새벽하늘과 유사
-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발표, 기존 6월 제작설에 새로운 해석 제시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은 소용돌이치는 하늘과 빛나는 별, 초승달처럼 가느다란 달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울 것 같은 이 풍경은 오랫동안 화가의 상상력과 감정이 만들어낸 이미지로 해석돼 왔다. 그런데 그림 속 하늘이 실제로 137년 전 프랑스의 어느 새벽에 펼쳐졌던 풍경을 바탕으로 그려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우주과학 관련 소식을 전하는 X ‘블랙홀(Black Hole)’은 24일 반 고흐가 1889년 7월 22일 무렵 프랑스 생레미드프로방스에서 관찰한 새벽하늘을 작품에 담았을 수 있다는 연구 내용을 소개했다.
이 소식은 한국 연구진이 참여해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22일 발표한 논문을 바탕으로 한다. 연구팀은 그림에 나타난 달과 금성, 별들의 배열을 당시의 실제 천체 위치와 비교해 기존에 알려진 작품 제작 시기를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별이 빛나는 밤’은 반 고흐가 1889년 프랑스 남부 생레미의 생폴드모졸 요양원에 머물던 시기에 제작한 작품이다. 현재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소장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1889년 6월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에는 짙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소용돌이와 강렬한 빛을 내는 별들, 오른쪽 위에 자리한 가느다란 달이 표현돼 있다. 화면 아래로는 고요한 마을과 산등성이가 펼쳐지고, 왼쪽에는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사이프러스 나무가 자리한다.
이 풍경은 실제 관찰과 예술적 상상이 결합된 작품으로 이해돼 왔다. 반 고흐가 요양원 창밖에서 바라본 자연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그림 속 마을은 창문에서 직접 볼 수 없는 풍경이며 별과 나무의 크기, 빛의 표현에도 화가의 의도적인 변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바로 그 하늘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반 고흐가 별의 위치와 배열을 완전히 상상해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 천체의 모습을 관찰한 뒤 자신만의 회화적 언어로 표현했을 가능성을 살펴봤다.
연구에는 경희대학교 우주과학 분야 박사과정 연구자이자 천체망원경 기업을 이끄는 김정현 연구자 등이 참여했다. 연구팀은 천문학적 시뮬레이션과 별의 위치 분석, 당시 기상 기록, 반 고흐가 남긴 편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먼저 반 고흐가 남긴 풍경 스케치와 현장 지형을 비교해 당시 화가가 바라봤을 것으로 추정되는 하늘의 범위를 복원했다. 이어 1889년 6월과 7월 새벽에 달과 금성, 주요 별들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계산했다.
분석 결과 1889년 7월 22일 새벽, 생레미의 동쪽 하늘에서는 가느다란 그믐달과 금성, 황소자리에 속한 히아데스성단이 그림과 유사한 배치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히아데스성단은 황소자리에서 볼 수 있는 별들의 집단으로, 하늘에서 V자 형태의 배열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그림 중앙부에 표현된 별들의 배치가 히아데스성단의 주요 별들이 이루는 형태와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별들의 상대적인 위치뿐 아니라 배열이 기울어진 방향까지 비교한 결과, 실제 하늘의 모습과 일정한 일치성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달의 모양도 중요한 단서가 됐다. 기존에 작품이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6월 중순에는 달의 위상이 그림 속 가느다란 달과 잘 맞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반면 연구팀이 주목한 7월 22일 새벽에는 달이 그림에 가까운 형태로 나타났으며, 금성과 히아데스성단도 함께 관측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연구팀은 당시의 기상 자료도 검토했다. 7월 22일 무렵 생레미의 하늘은 해당 천체들을 관측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 고흐가 편지에 남긴 날씨와 매미 소리에 관한 기록 역시 계절적 환경을 살펴보는 보조 자료로 활용됐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연구팀은 반 고흐가 6월에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더라도 실제 하늘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림을 완성한 시점은 7월 하순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연구 결과가 곧바로 작품의 제작 날짜를 확정하는 것은 아니다.
반 고흐는 실제 풍경을 그대로 옮겨 그리기보다 관찰한 장면을 기억과 감정을 통해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별이 빛나는 밤’ 역시 여러 차례에 걸쳐 제작됐으며, 서로 다른 날에 관찰한 하늘의 모습이 하나의 화면에 결합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기존 미술사 연구와의 차이도 남아 있다.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은 작품이 1889년 6월에 완성됐다는 기존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그림 속 천체의 위치만으로 제작 시기를 확정하기 어렵고, 반 고흐의 편지와 당시 작업 기록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연구팀이 제시한 7월 하순의 관찰 가능성은 당시 반 고흐의 건강 상태에 관한 기존 해석과도 관련돼 있다. 연구진은 편지와 기록을 다시 검토해 발작 시기에 대한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정확한 시점을 확인할 수 있는 의료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오랫동안 받아들여진 제작 시기를 뒤집는 확정적인 결론이라기보다 천문학적 분석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가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회화 속 별의 위치와 달의 모양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19세기 화가의 편지와 기상 기록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미술 작품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동안 ‘별이 빛나는 밤’은 반 고흐의 내면과 감정, 자연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사랑받아 왔다. 이번 연구는 여기에 실제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했던 화가의 시선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더한다.
그림 속 거대한 소용돌이와 강렬한 별빛은 여전히 반 고흐만의 표현이다. 실제 하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바라본 풍경이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진 것은 아니다. 눈앞의 자연을 어떻게 느끼고 표현할 것인가는 화가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연구가 던지는 질문은 ‘별이 빛나는 밤’이 상상으로 그려졌는지, 실제 하늘을 재현했는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 예술가가 자연을 얼마나 깊이 관찰했고, 그 경험을 어떻게 자신만의 작품으로 만들어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137년 전 프랑스의 어느 새벽, 반 고흐가 바라봤을지도 모를 달과 별들의 배열이 오늘날 천문학적 분석을 통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학이 찾아낸 하늘의 흔적은 그의 예술적 상상력을 부정하기보다, 그 상상력이 출발했을 자연의 풍경을 조금 더 가까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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