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주거 지형이 다시 변하고 있다. 한때 전세사기 공포로 외면받던 빌라 시장에 임차인들이 돌아오고 있다. 연립·다세대 주택의 전월세 거래량이 증가하고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비중까지 높아진 것은 단순한 시장 회복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서울 주택시장에서 서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주거 대안이 점차 좁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동안 빌라는 전세사기 사태의 중심에 있었다. 수많은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서 빌라 시장은 깊은 불신에 빠졌다. 당시 임차인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아파트 전세시장으로 이동했고, 빌라는 거래 절벽과 가격 하락을 겪었다.
그러나 시장은 다시 움직이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4월 서울 연립·다세대 주택의 전월세 거래량은 4만9,67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만6,244건보다 7.4% 증가했다. 직전 4개월인 지난해 9~12월 거래량 4만3,807건과 비교하면 무려 13.4% 늘어난 수치다.
서울 아파트 전월세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이 이러한 변화의 배경으로 꼽힌다. 임차인들은 더 이상 아파트를 선택하기 어려워졌고,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낮은 빌라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는 빌라의 경쟁력이 갑자기 높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아파트 시장의 진입장벽이 높아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가격 역시 빠르게 오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4월 서울 연립주택 전셋값은 전월 대비 0.44% 상승하며 2013년 9월 이후 12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올해 1~4월 누적 상승률도 1.34%로, 2011년 이후 같은 기간 기준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월세 상승세는 더욱 가파르다. 올해 1~4월 서울 연립주택 월세 누적 상승률은 1.60%로 전세 상승률을 넘어섰으며,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5년 이후 동기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제 임차인이 부담한 평균 전세보증금은 지난해 2억3,323만 원에서 올해 2억4,098만 원으로 775만 원 상승했고, 평균 월세도 54만8,000원에서 56만2,000원으로 올랐다.
주목할 부분은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증가다. 올해 1~4월 서울 연립·다세대 주택의 갱신계약 비중은 27.25%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6.73%보다 높아졌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비중이 지난해 24.8%에서 올해 32.0%로 7.2%포인트 급증했다는 점이다. 이는 임차인들이 임대료 인상률을 5% 이내로 제한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적극 활용하며 현재 거주지에 더 오래 머무르려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빌라 시장의 회복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오히려 서울 주거시장이 점차 양극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산을 보유한 계층은 부동산 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리지만, 무주택 임차인들은 더 높은 전월세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빌라 수요 증가는 시장의 활력을 의미하기보다 주거 선택권이 줄어든 시민들의 현실적인 적응 과정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공급 부족과 높은 매매가격, 전월세 가격 상승이 지속될 경우 이러한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빌라는 다시 서울 서민 주거의 핵심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만, 이는 긍정적 변화라기보다 대안 부족의 결과일 수 있다.
서울의 빌라 시장은 지금 부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치솟는 주거비 속에서 서민들이 다시 선택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주거 사다리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거래량 증가라는 숫자 뒤에는 주거 불안과 비용 부담 속에서 더 나은 선택지를 찾지 못한 시민들의 현실이 담겨 있다. 결국 주거 문제는 단순한 부동산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지속가능성과 시민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회적 과제임을 다시 확인시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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