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역사적 판결을 내리면서도, 연방준비제도(Fed)의 독립성과 성추행·명예훼손 사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상반된 결정을 내렸다. 미국 주요 외신들은 이번 판결이 "대통령 권한 확대와 권력 견제 사이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중대한 분수령"이라고 평가했다.
현지시간 29일 미국 CNN과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AP통신 등에 따르면 연방대법원은 6대 3 의견으로 대통령이 독립 연방기관 수장을 보다 폭넓게 해임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는 1935년 이후 약 90년간 유지돼 온 '험프리의 유언집행인 대 미국(Humphrey's Executor v. United States)' 판례를 사실상 뒤집는 결정으로, 미국 행정부 운영 방식 자체를 크게 변화시킬 가능성이 제기된다.
90년 판례 뒤집은 대법원…대통령 권한 대폭 확대
쟁점은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이었던 레베카 켈리 슬로터의 해임이었다.
기존 법리는 FTC와 같은 독립기관의 위원은 직무상 중대한 비위나 직무유기 등 '정당한 사유(for cause)'가 있을 때만 대통령이 해임할 수 있도록 제한해 왔다. 그러나 대법원 다수 의견은 이러한 제한이 대통령의 헌법상 행정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다수 의견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는 공직자는 대통령에 의해 해임될 수 있어야 하며, 그래야만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고 결국 국민에게 책임지는 정부가 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FTC를 비롯해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연방통신위원회(FCC),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등 독립성이 보장됐던 다수 기관의 구조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진보 대법관 "권력 균형 무너뜨리는 역사적 판결"
반면 진보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낭독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이번 판결은 수세기 동안 유지돼 온 정치적 균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결정"이라며 "정부 권력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연방정부 기능에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신들은 대법관이 법정에서 직접 반대 의견을 낭독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전했다.
연준은 예외…리사 쿡 해임은 제동
그러나 같은 날 대법원은 연방준비제도 이사인 리사 쿡 사건에서는 다른 결론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쿡 이사가 과거 주택담보대출 과정에서 허위 신고를 했다고 주장하며 해임을 시도했지만, 대법원은 적법 절차 없이 소셜미디어 발표만으로 해임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최소한 ▲혐의에 대한 구체적 설명 ▲당사자의 반론 기회 ▲충분한 심사 절차가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쿡 이사는 본안 판단이 끝날 때까지 연준 이사직을 유지하게 된다.
다만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다시 해임을 추진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은 향후 다시 연방대법원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연준 독립성 흔들리면 미국 경제 불안"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쟁점 가운데 하나는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이었다.
보수 성향의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별도 의견에서 "연준의 독립성에 대한 일시적인 불확실성만으로도 미국과 세계 경제를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학계 역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물가 안정과 금융시장 신뢰 유지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이번 결정이 연준 자체의 독립성을 유지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반면 클라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연준이 지난 수십 년간 경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했다는 평가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보다 강한 대통령 권한을 지지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우편투표도 유지…"선거법 문구 바꿀 수 없다"
대법원은 별도 판결에서 선거일 이후 도착한 우편투표를 일정 기간 인정하는 미시시피주 선거법도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5대 4로 내려진 이번 판결에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연방법은 선거일 자체를 규정할 뿐, 우편투표 접수 시점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우편투표 제한 요구와는 배치되는 판단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소셜미디어를 통해 "엄청난 손실"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E. 진 캐럴 사건 항소도 최종 기각
대법원은 또 전직 칼럼니스트 E. 진 캐럴에게 성적 학대와 명예훼손을 저질렀다는 민사재판 결과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상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뉴욕 배심원단이 인정한 500만 달러의 손해배상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해당 금액을 법원 공탁 계좌에 예치한 상태여서 캐럴은 조만간 배상금을 지급받게 될 전망이다.
외신 "트럼프에 절반의 승리"
CNN은 이번 판결을 "트럼프에게 중요한 승리이면서도 동시에 명확한 한계를 설정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독립기관에 대한 대통령 권한은 크게 확대됐지만, 연준과 선거제도, 사법 판단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일정한 견제 장치를 유지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935년 이후 유지된 미국 행정부의 기본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역사적 순간"이라며, 이번 판결이 향후 모든 대통령의 권한 행사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단순히 트럼프 행정부를 넘어 향후 미국 대통령제 운영 방식과 독립기관의 위상,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성, 권력분립 원칙 전반에 걸쳐 새로운 헌법적 기준을 제시한 판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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