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비시민권자 불법 투표'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주(州) 정부 선거 관리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행정부가 근거로 제시한 수치 상당수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선거 보안 강화라는 명분보다 선거 불신을 조장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니냐는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주요 언론과 CNN 보도 등을 종합하면,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DHS) 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캘리포니아, 뉴저지, 네바다, 펜실베이니아 등 4개 주에서 약 25만 명의 비시민권자가 유권자로 등록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대국민 연설에서 제기한 선거 부정 의혹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로 제시됐다.
그러나 국토안보부가 각 주 정부에 보낸 공식 서한에는 이 같은 수치가 어디까지나 '잠재적 가능성'에 불과하며 추가 확인이 필요한 미검증 자료라는 점이 명시돼 있었다.
대표적으로 펜실베이니아주에 전달된 서한은 "최대 1만4,576명의 비시민권자가 유권자 명부에 등록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실제 주 정부 기록상 확인된 사례는 8,594명이며 이 역시 추가 신원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토안보부는 주 정부에 자료 공유와 공동 조사를 요청하며 결과의 정확성을 확보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공개 발언에서는 이러한 단서를 거의 언급하지 않은 채 수십만 명의 비시민권자가 등록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치적 논란을 키우고 있다.
주 정부와 선거관리 당국 "증거 부족…과장된 주장"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 소속 선거관리 책임자들도 행정부의 주장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 국무장관 앨 슈미트(공화당)는 "현재까지 모든 증거는 비시민권자의 투표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국토안보부가 조사 방법과 명단을 공유한다면 객관적으로 검증하겠지만, 현재 공개된 정보만으로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네바다주 국무장관 프란시스코 아길라르는 "25만 명이라는 숫자는 추정치에 불과하며 이를 입증할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워싱턴주 국무장관 스티브 홉스는 "행정부가 법적 난관에 부딪히자 정치적 압박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으며, 뉴햄프셔주 공화당 소속 데이비드 스캔런 국무장관 역시 법무부의 위협을 "전혀 두렵지 않다"고 일축했다.
핵심 근거 'SAVE 시스템' 신뢰성 논란
논란의 중심에는 국토안보부가 활용하고 있는 'SAVE(Systematic Alien Verification for Entitlements)' 데이터베이스가 있다.
SAVE는 원래 복지와 각종 행정서비스 신청자의 체류 자격을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선거관리 목적으로 활용할 경우 시민권 취득 이후 정보가 즉시 반영되지 않거나 동일인 식별 오류가 발생할 수 있어 오래전부터 '잠재적 비시민권자'를 실제보다 많이 표시하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로 국토안보부도 각 주에 제공하는 자료에 대해 "추가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안내 문구를 포함하고 있으며, 단순 조회 결과만으로는 불법 유권자로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부는 공개 발표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조사 결과는 훨씬 적어
공화당이 주도하는 일부 주에서도 실제 조사 결과는 행정부 발표보다 크게 낮게 나타나고 있다.
조지아주의 경우 SAVE 시스템은 2,549명을 잠재적 비시민권자로 표시했지만, 추가 검토 결과 실제 투표 기록이 확인된 사람은 약 120명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노스캐롤라이나와 미주리 역시 현재 시민권 여부를 개별적으로 재확인하고 있으며, 주 정부들은 단순 데이터 일치만으로는 불법 투표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미주리주 공화당 소속 국무장관 데니 호스킨스는 "1,000명 이상에 대한 시민권 여부를 계속 확인 중이며 아직 최종 결론을 내릴 단계는 아니다"고 밝혔다.
연방법원도 제동…주 정부와 충돌
트럼프 행정부는 법무부를 통해 전국 50개 주에 유권자 명부 제출을 요구하며 선거 데이터 감사를 추진하고 있지만, 연방법원에서는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
현재 12개 이상의 법원이 주 정부의 손을 들어주며 연방정부의 자료 제출 요구를 기각했으며, 일부 연방법원은 SAVE 시스템을 이용한 대규모 유권자 감사 자체가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국토안보부는 협조하지 않는 선거관리 책임자들에게 벌금이나 형사처벌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중간선거 앞두고 다시 불붙은 '선거 부정' 논쟁
정치권에서는 이번 논란이 2026년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다시 '선거 신뢰성'을 핵심 의제로 부각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이후 지속적으로 선거 부정을 주장해 왔으며, 이번에도 비시민권자 투표 문제를 핵심 쟁점으로 삼고 있다.
반면 선거 전문가들과 양당의 상당수 주 선거관리 책임자들은 미국에서 비시민권자의 실제 투표 사례는 매우 드물며,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광범위한 조직적 부정선거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사회에서는 선거 보안 강화를 위한 데이터 검증과 함께, 검증되지 않은 수치가 정치적으로 활용될 경우 오히려 선거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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