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제국의 1904년 전시국외중립 선언과 대미 외교 재조명
“1905년 일본과 체결한 을사보호조약은 조선의 황제가
조인하거나 동의한 일이 없다.
일본이 조선의 재정을 통제하는 것도 부당하다.
조선의 황제는 세계 열강이 조선을 집단적으로 보호·통치하되,
그 기한은 5년을 넘지 않도록 하기를 바란다.
열강이 일본의 조선 침략을 막아주고
조선의 영세중립을 보장하라.”
-1906년 2월 영국 《트리뷴(The Tribune)》을 통해 보도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 강종일 회장은 지난 7월 7일 서울 천도교 수운회관 1411호에서 영세중립 관련 시민단체 회원들을 대상으로 ‘고종 황제의 영세중립 정책’을 주제로 강연했다.
강 회장은 이날 강연에서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지키기 위해 영세중립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며, 이러한 중립외교의 역사적 의미가 오늘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모색하는 데도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강 회장은 또 일본 역사학자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의 『조선통사(朝鮮通史)』를 비롯한 일본 식민주의 역사학이 한국사 서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한국 상고사는 물론, 고종 황제가 추진한 중립외교와 국권 수호 노력이 한국사 교육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강 회장은 “고종 황제는 자주독립을 지키기 위해 영세중립 정책을 필사적으로 추진했다”며 “1904년 1월 21일 대한제국은 러시아와 일본의 대립이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에 대비해 전시국외중립을 선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일본은 대한제국의 중립 선언을 무시하고 러일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 군대를 진주시켰으며, 대한제국의 중립외교를 사실상 무력화했다”고 주장했다.
강 회장은 고종 황제가 추진한 중립외교가 122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한반도 안보와 평화통일을 위해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분단을 극복하고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종의 중립외교를 역사적 관점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고종의 중립화 외교
강 회장에 따르면 고종 황제는 1900년 8월 조병식(趙秉式) 주일공사를 통해 일본 정계의 중진인 고노에 아쓰마로(近衛篤磨)와 대한제국의 영세중립 문제를 협의하려 했다.
그러나 고노에는 대한제국이 영세중립국이 될 준비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국방은 일본에 위임하고 대한제국은 내치에 전념하라”는 취지의 요구를 내놓았고, 중립화 협력에는 응하지 않았다고 강 회장은 설명했다.
고종 황제는 같은 해 10월 도쿄 주재 조병식 공사에게 주일 미국공사와 대한제국의 중립화 문제를 협의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조병식 공사는 앨프리드 E. 벅(Alfred E. Buck) 주일 미국공사에게 미국 정부의 협력을 요청했다. 그러나 벅 공사는 영세중립과 같은 중대한 외교 문제는 워싱턴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을 통해 정식 외교문서로 미국 정부에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조병식 공사는 도쿄 주재 러시아공사 알렉산드르 이즈볼스키(Alexander P. Isvolsky)와도 대한제국의 중립화 문제를 협의했다.
강 회장은 이즈볼스키 공사가 일본 측에 대한제국의 영세중립을 지원할 의사가 있는지 문의했으나, 일본 정부로부터 “대한제국의 영세중립 문제를 협의할 입장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대한제국 밀사로 일본을 방문한 현영운(玄映運)이 1903년 9월 중립화 문제를 일본 정부에 다시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종 황제는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전운이 짙어지자 1904년 1월 21일 대한제국이 양국의 분쟁에 대해 엄정중립을 지키겠다는 전시국외중립 선언을 발표하고 이를 열강에 통보했다.
미국에 거중조정(居中調停, good offices)요청
강 회장은 고종 황제가 1882년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 제1조의 거중조정 조항을 근거로 미국에 대한제국의 자주독립과 중립 보전을 지원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고종 황제는 1904년 워싱턴 주재 조민희(趙民熙) 공사에게 대한제국 공사관 고문으로 활동하던 찰스 W. 니덤(Charles W. Needham)을 통해 대한제국 문제를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협의하도록 비밀리에 지시했으나 뚜렷한 회신을 받지 못했다고 강 회장은 전했다.
1905년에는 이승만(李承晩)과 윤병구(尹炳求)가 미국을 방문했다. 두 사람은 하와이에서 윌리엄 H. 태프트(William H. Taft) 미국 육군장관으로부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소개장을 받아 그해 8월 4일 대통령을 면담했다.
이들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대한제국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미국의 중재와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가 간의 중대한 문제는 대한제국 정부가 정식 외교문서로 제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며 적극적인 협력에 나서지 않았다.
강 회장은 고종 황제가 1905년 서울 주재 미국공사 에드윈 V. 모건(Edwin V. Morgan)에게도 미국이 대한제국의 독립과 중립을 위해 거중조정에 나서 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헐버트가 전달한 고종의 밀서
고종 황제는 1905년 10월 대한제국에서 교사와 작가, 언론인으로 활동하던 호머 B. 헐버트(Homer B. Hulbert)를 미국에 파견했다.
헐버트는 그해 11월 엘리후 루트(Elihu Root)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 고종 황제의 서신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 정부는 이를 대한제국 정부가 공식 외교 경로로 제출한 문서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대한제국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 회장은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헐버트 씨가 제출한 고종 황제의 편지를 읽었으나,
대한제국 황제는 서신의 내용을 비밀로 해주기를 바라면서
미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를 대한제국 정부의 공식 외교문서로
볼 수 없으므로 도울 수 없다.”
고종 황제는 1905년 12월 파리 주재 민영찬(閔泳瓚) 공사에게도 미국 정부에 협력을 요청하도록 지시했다. 공사는 고종의 뜻을 루트 국무장관에게 전신으로 전달했으나 미국 정부로부터 협력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강 회장은 고종 황제가 전 주한 미국공사 호러스 N. 알렌(Horace N. Allen)을 통해 미국 내 여론과 정계에 도움을 요청하려 했다고도 설명했다.
강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고종 황제는 알렌에게 로비와 활동 경비로 1만 달러 상당의 금괴를 전달했으나, 알렌은 미국 정부의 정책이 이미 일본에 유리하게 기울어 있어 로비 활동이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적임자를 찾지 못한 채 활동을 포기하고 자금을 고종 황제에게 돌려줬다는 것이다.
더글러스 스토리가 공개한 고종의 밀서
고종 황제는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대한제국에 체류하던 영국 《트리뷴(The Tribune)》의 더글러스 스토리(Douglas Story) 기자에게도 밀서를 전달했다.
강 회장에 따르면 이 밀서는 1906년 2월 《트리뷴》을 통해 보도됐다. 밀서에는 을사늑약이 고종 황제의 승인 없이 강압적으로 체결됐다는 점과 일본의 대한제국 재정 통제가 부당하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또한 세계 열강이 일정 기간 대한제국을 공동으로 보호하고 일본의 침략을 막아 대한제국의 중립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가 포함됐다고 강 회장은 설명했다.
“1905년 일본과 체결한 을사보호조약은 조선의 황제가
조인하거나 동의한 일이 없다.
일본이 조선의 재정을 통제하는 것도 부당하다.
조선의 황제는 세계 열강이 조선을 집단적으로 보호·통치하되,
그 기한은 5년을 넘지 않도록 하기를 바란다
.열강이 일본의 조선 침략을 막아주고
조선의 영세중립을 보장하라.”
-1906년 2월 영국 《트리뷴(The Tribune)》을 통해 보도
헤이그 특사로 이어진 국권 회복 외교
고종 황제의 국권 회복 외교는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으로 이어졌다.
고종 황제는 1907년 6월 이상설·이준·이위종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했다. 이들은 을사늑약의 강제성과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려고 했다.
그러나 일본의 외교적 방해와 열강의 외면으로 회의에 공식 참석하지 못했다. 일본은 헤이그 특사 파견을 문제 삼아 고종 황제를 압박했고, 결국 같은 해 7월 고종은 황제 자리에서 물러났다.
강 회장은 “고종 황제의 중립외교는 열강의 침략과 외면 속에서 좌절됐지만, 강대국 사이에서 국가의 생존과 자주독립을 모색한 외교적 시도였다는 점에서 재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반도가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에서 벗어나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고종의 중립외교가 던지는 역사적 의미를 오늘의 국제정세 속에서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끝으로 다음과 같은 영국 정치가 파머스턴 경의 경구를 소개했다.
“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
영원한 것은 국가의 이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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