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 시대의 피난처를 찾아 떠나는 내면 여행… 중국 윈난성 리장에서 발견한 ‘살아 있음’의 의미
폭염과 열대야가 일상이 된 시대, 한 사람이 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나 오래된 고성(古城)으로 향한다. 목적은 관광이 아니다. 정복해야 할 명소를 찾아가는 여행도 아니다. 한 달 동안 머물며 걷고, 먹고,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삶의 여행’이다.
그가 선택한 곳은 중국 윈난성(雲南省)의 리장(麗江)이다.
“인생 뭐 있나. 리장에서 한 달 사는 거지.”
이 짧은 문장은 단순한 여행 계획이 아니라,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인의 삶에 던지는 하나의 질문이다. 무엇을 더 얻기 위해 달려가는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어디에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묻는 철학적 선언이다.
리장은 그에게 오래된 기억 속에서 다시 떠오른 장소였다. 20여 년 전 중국 소수민족 문화를 연구했던 한 대학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도시. 당시에는 유럽과 인도, 이집트 등 더 먼 세계에 대한 관심이 커서 지나쳤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리장은 다시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중국 남서부 윈난성에 위치한 리장은 나시족(納西族)을 비롯한 다양한 소수민족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해발 약 2,400m 고지대에 자리 잡은 이 도시는 옥룡설산(玉龍雪山)과 고성의 골목, 전통 건축과 자연 풍광이 어우러져 독특한 시간성을 간직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1997년 리장 고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며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했다.
그가 리장을 주목한 이유는 화려함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중심보다 주변, 속도보다 머무름을 선택하는 삶의 태도 때문이다.
그는 리장을 “늘봄 리장”이라 부른다. 사계절의 변화 속에서도 봄날 같은 온기를 품은 공간, 시간이 멈춘 듯한 오래된 도시라는 의미다. 뜨거운 기후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인간이 다시 찾아야 할 삶의 감각을 리장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의 글에는 기후위기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 봄과 가을이 사라지고 폭염과 자연재해가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인간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에게 리장은 단순한 피서지가 아니라, 무너져가는 계절 감각을 회복하는 장소다.
하지만 그의 여행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바라보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그는 “우리는 중국을 잘 모른다”고 말한다. 정치적 갈등이나 감정적 판단을 넘어, 이웃 국가를 직접 경험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이나 영상으로 소비하는 중국이 아니라, 골목을 걷고 시장에서 음식을 사고 현지인의 삶 속에 들어가야 진짜 중국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꿈꾸는 리장 한 달 살이는 특별한 일정표가 없다.
아침이면 골목을 걷고, 시장에서 장을 보고, 직접 밥을 짓는다. 때로는 이름 없는 작은 술집에 앉아 현지의 술과 이야기를 나눈다. 유명 관광지를 빠르게 돌아보는 여행이 아니라, 한 도시의 호흡 속으로 들어가는 체류다.
이는 최근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슬로우 트래블(Slow Travel)’과도 닮아 있다. 여행지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와 관계를 맺으며 삶의 방식을 다시 발견하는 여행이다.
그는 오랫동안 제주라는 섬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익숙한 공간은 때로 감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며, 새로운 자극과 생의 활력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리장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배치(agencement)’한다. 철학자 질 들뢰즈가 말한 배치의 개념처럼, 인간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공간과 관계 속에서 다시 구성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결국 리장 여행은 외부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여행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기보다, 더 깊이 경험하고 더 천천히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짧지만, 그 안에서 한 사람은 다시 삶의 감각을 찾을 수 있다.
폭염의 시대, 경쟁의 시대, 불안의 시대.
한 사람이 오래된 고성 리장으로 떠나는 이유는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다.
더 잘 살아보기 위해서다.
“인생 뭐 있나. 리장에서 한 달 사는 거지.”
이 문장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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