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동안 중단됐던 국가 차원의 친일재산 조사가 올해 말 다시 시작된다. 오는 12월 3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식민지 권력에 협력하는 과정에서 축적한 재산을 조사하고 국가에 귀속하는 작업이 재개될 전망이다.
이번 조치는 단순히 오래된 토지를 찾아 국가 재산으로 편입하는 행정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 해방 이후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했던 일제강점기의 과거사 청산을 다시 국가적 의제로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친일 행위로 형성된 재산이 해방 이후 어떤 경로를 거쳐 후손에게 이어졌는지를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역사적 불공정을 법과 제도 안에서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친일 청산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감정 때문만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배에 협력한 세력이 해방 이후에도 경제적·사회적 기반을 상당 부분 유지한 반면,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충분한 보상과 사회적 기반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역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의 친일재산 조사는 2006년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를 통해 본격화됐다. 1기 조사위원회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활동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 168명의 토지 2천359필지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을 내렸으며, 당시 시가 기준으로 약 2천373억원 규모의 재산이 국가에 귀속됐다. 그러나 조사위원회가 2010년 해산하면서 새로운 친일재산을 국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조사할 전담기구는 사라졌다.
이후에도 기존에 확인된 친일재산을 둘러싼 소송과 환수 작업은 이어졌지만 새로운 재산을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조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 특별법은 이러한 제도적 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성격을 갖는다.
새 법에는 친일재산 자체뿐 아니라 해당 재산을 처분해 얻은 대가까지 환수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이 담겼다. 친일재산이 이미 매각되거나 다른 형태의 자산으로 바뀌었더라도 그 형성과 처분 과정을 추적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친일재산을 발견해 신고한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는 규정도 신설됐다.
법무부는 지난 6월 조사위원회 출범을 준비하기 위한 설립준비단을 구성했다. 법무부를 비롯해 행정안전부와 국가보훈부, 산림청 등 관계 부처가 참여해 조사위 출범에 필요한 법령과 조직, 조사계획 등을 마련하고 있다. 향후 국가에 귀속되는 재산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관련 사업 등에 우선 활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친일재산 환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 가문의 재산을 단순히 환수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재산이 일제의 식민통치와 친일 행위의 대가로 형성됐는지,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소유권이 이전됐는지를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이번 조사 역시 정치적 논란이나 개인에 대한 낙인찍기와는 분명히 구분될 필요가 있다. 친일 행위자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재의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확인된 친일 행위와 재산의 형성 과정 사이에 법적·사실적 연관성이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두고 있는 것도 이러한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독일의 나치 청산 과정은 한국 사회가 참고할 만한 중요한 사례다. 물론 일제강점기의 식민지배와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 및 홀로코스트를 동일한 역사적 사건으로 볼 수는 없다. 두 사건의 배경과 성격, 피해의 규모와 구조는 서로 다르다. 그러나 국가가 과거의 중대한 범죄와 인권침해를 어떻게 청산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회복할 것인가라는 측면에서는 비교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독일의 과거 청산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시작된 탈나치화에서 출발했다. 나치당과 관련 조직을 해체하고 핵심 책임자들을 처벌하거나 공직에서 배제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그러나 독일의 과거 청산은 처벌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치 정권 아래에서 재산을 빼앗긴 피해자들에게 재산을 반환하거나 보상하는 제도가 만들어졌고, 약탈된 문화재와 미술품에 대한 반환 작업도 장기간 이어졌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작업이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은 나치 정권의 박해로 재산을 빼앗긴 피해자들을 위한 반환과 보상 제도를 유지해왔으며, 나치가 약탈한 문화재에 대해서도 출처를 조사하고 정당한 소유자나 후손에게 돌려주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독일의 사례에서 더욱 주목할 부분은 과거 청산이 재산 문제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치 범죄를 기록하고 피해자를 기억하며, 학교와 사회에서 이를 교육하고, 기념시설을 통해 후대에 전달하는 과정이 함께 진행됐다.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 곳곳에 나치의 범죄와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공간이 만들어진 것도 이러한 역사적 성찰의 결과다.
이는 한국의 친일 청산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친일재산을 환수하는 것은 과거 청산의 한 부분일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식민지배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났고 누가 어떤 방식으로 협력했으며 그 결과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작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친일재산의 형성과 이동 과정을 역사적으로 복원하는 작업은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토지대장과 등기자료, 일제강점기의 관보와 신문, 기업 및 금융 관련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재산이 어떤 경로로 축적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기록이 축적될 때 친일 청산은 정치적 논쟁을 넘어 객관적인 역사 연구의 영역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독일의 경험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과거 청산에 ‘완료’라는 시점을 설정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전쟁과 독재가 끝났다고 해서 그 시대에 발생한 재산 박탈과 인권침해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의 후손이 수십 년 뒤 새로운 자료를 발견할 수도 있고, 당시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재산이나 문화재의 이동 경로가 뒤늦게 확인되기도 한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 8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일제강점기의 친일 행위와 그 결과 형성된 재산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모두 밝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친일재산조사위원회의 재출범은 과거를 다시 끄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아직 정리되지 않은 역사의 기록을 완성하는 과정으로 볼 필요가 있다.
다만 과거사 청산이 사회적 갈등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서는 안 된다. 조사와 환수의 모든 과정은 법률과 증거에 따라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재산의 형성과 소유권 이전 과정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대상과 범위를 임의로 확대하거나 개인의 혈통을 기준으로 책임을 묻는 방식은 오히려 역사 청산의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다.
결국 친일재산 환수의 핵심은 ‘누구의 후손인가’를 묻는 데 있지 않다. 어떤 재산이 어떤 역사적 행위를 통해 형성됐으며, 그 과정에서 누구의 권리가 침해됐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본질이다.
역사 청산의 목적 역시 과거에 대한 복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식민지배에 협력한 행위가 경제적·사회적으로 보상받는 결과로 남지 않도록 하고, 독립과 인권,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국가 공동체의 기본 원칙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16년 만에 다시 시작되는 친일재산 조사는 대한민국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미래 세대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묻는 작업이기도 하다. 독일의 사례처럼 진정한 과거 청산은 재산을 환수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록과 교육, 피해자에 대한 기억과 보상, 사회적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
과거를 잊지 않는 것이 과거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잘못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그 책임을 제도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야말로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가장 현실적인 장치가 될 수 있다.
이번 친일재산조사위원회의 재출범이 정치적 논쟁을 넘어 객관적인 조사와 역사적 기록의 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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