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IQ 글로벌 보고서 “소비자 58%, 제조사 브랜드·자체 브랜드 구분 없이 필요한 제품 구매”…가격 넘어 품질·가치·편의성 경쟁 본격화
고물가 시대가 장기화하면서 소비자의 장바구니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유명 제조사 브랜드인지, 익숙한 상표인지가 구매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면 이제는 가격과 품질, 편의성 등 자신의 필요를 얼마나 충족시키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소비자 인텔리전스 기업 닐슨IQ(NIQ)가 최근 발표한 글로벌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의 58%는 제품이 전국 규모의 제조사 브랜드인지, 소매업체의 자체 브랜드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단순히 자신에게 필요한 제품을 구매한다고 답했다.
자체 브랜드, 이른바 PB(Private Brand)가 더 이상 경기 침체기에 소비자가 선택하는 단순한 ‘저가형 대체재’가 아니라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춘 하나의 브랜드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NIQ와 월드 데이터 랩(World Data Lab)이 공동으로 분석한 ‘두 소비자 이야기: 글로벌 소비를 재편하는 양극화된 심리’ 보고서는 소비자의 구매력이 양극화되는 가운데, 소비자들이 하나의 기준으로 소비하지 않고 상품과 상황에 따라 지출을 줄이거나 오히려 더 높은 가격의 제품을 선택하는 등 유연한 소비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4년간 FMCG 가격 26% 상승…달라진 소비자의 선택
이번 변화의 배경에는 지속된 물가 상승이 있다.
NIQ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전 세계 빠르게 움직이는 소비재, 즉 FMCG 가격은 26% 상승했다. 식품과 생활용품 등 일상적으로 구매하는 제품의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은 무엇을 아끼고 어디에 돈을 쓸 것인지 더욱 세밀하게 따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소비자는 모든 상품에서 무조건 저렴한 제품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품목에서는 지출을 줄이고 품질이나 만족도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제품에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선택적 소비’를 강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체 브랜드의 위상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조사 결과 소비자의 68%는 자체 브랜드 제품을 전국 규모 제조사 브랜드의 좋은 대안으로 인식했으며, 69%는 자체 브랜드가 가격 대비 좋은 가치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Z세대 소비자의 67%는 자체 브랜드 제품이 전국 규모 제조사 브랜드만큼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명 브랜드이기 때문에 선택한다’는 기존의 소비 공식이 점차 약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싸서 산다”에서 “괜찮아서 산다”로
자체 브랜드의 성장은 단순한 가격 경쟁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NIQ의 분석이다.
과거 자체 브랜드는 주로 제조사 브랜드보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제품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제품의 품질과 디자인, 포장, 원재료, 기능 등을 개선하면서 일반 브랜드 제품과 경쟁하거나 일부 분야에서는 프리미엄 제품군까지 확대하고 있다.
소비자 역시 자체 브랜드를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제품’이 아니라 자신의 소비 목적에 맞는 하나의 선택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NIQ는 현재의 자체 브랜드가 가치형, 일반형, 프리미엄 제품군 전반에서 제조사 브랜드와 경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소매업체 입장에서도 중요한 변화다. 유통업체가 단순히 다른 제조사의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자체적으로 상품을 기획하고 브랜드를 구축하며 소비자와 직접 경쟁하는 시장 참여자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한편으로 절약하고, 다른 한편으로 업그레이드한다
이번 보고서가 주목한 또 하나의 변화는 소비자의 ‘양극화된 소비 심리’다.
소비자들은 하나의 소비 성향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생활필수품에서는 가격을 꼼꼼히 비교하며 저렴한 제품이나 할인 상품을 선택하는 반면,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품목에서는 프리미엄 제품을 선택하는 식이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의 약 3분의 1은 더 저렴한 제품이나 할인 중인 다른 브랜드로 바꿀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것이 곧 모든 소비가 저가 제품으로 이동한다는 뜻은 아니다. 소비자는 카테고리와 상황에 따라 절약과 업그레이드를 동시에 선택한다.
예를 들어 일상적으로 반복 구매하는 생활용품에서는 자체 브랜드를 선택해 지출을 줄이면서도, 품질이나 경험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다른 상품에는 오히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에게 중요한 것은 ‘비싼 제품’이나 ‘싼 제품’이라는 단순한 구분이 아니라 자신이 지불한 가격만큼의 가치를 얻었다고 느끼는지 여부다.
브랜드 충성도 약화…“누가 만들었나”보다 “무엇을 주는가”
이 같은 변화는 전통적인 제조사 브랜드에도 적지 않은 과제를 던지고 있다.
오랫동안 소비재 시장에서 유명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품질과 신뢰의 상징으로 작용해 왔다. 하지만 자체 브랜드의 품질이 향상되고 제품 간 성능 차이가 줄어들면서 브랜드 이름만으로 소비자를 붙잡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소비자는 이제 제품을 만든 회사의 이름보다 가격과 품질, 편의성, 디자인, 구매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하고 있다.
NIQ의 라몬 멜가레호 E-커머스 사장은 소비자들이 더 이상 제품을 누가 만들었는지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품질과 가치, 편의성, 관련성의 조합을 따져 선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소비재 시장의 경쟁 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대형 제조사가 브랜드 인지도와 대규모 마케팅을 통해 시장을 주도했다면, 앞으로는 유통업체의 자체 브랜드와 중소 제조사, 전문 브랜드까지 소비자의 선택을 놓고 보다 직접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 유통시장에도 던지는 메시지
이러한 글로벌 소비 흐름은 국내 유통시장과 제조업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에서도 대형마트와 편의점, 온라인 플랫폼 등을 중심으로 자체 브랜드 제품이 식품과 생활용품을 넘어 건강식품, 가전, 패션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물가 부담 속에서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을 찾는 동시에 제품의 품질과 차별성까지 요구하면서, PB 상품 역시 더 이상 단순한 저가 제품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유통업체에게는 자체 브랜드를 통해 독자적인 상품 경쟁력을 강화할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제조업체에는 더욱 치열한 경쟁 환경이 될 수 있다.
특히 제조사 브랜드는 단순히 ‘오랫동안 알려진 브랜드’라는 장점만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기대하기보다, 왜 이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반대로 자체 브랜드 역시 낮은 가격만을 앞세우는 전략에서 벗어나 품질과 혁신, 차별화된 상품 기획을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진열대 위 경쟁, 새로운 국면으로
NIQ의 이번 보고서는 소비시장의 변화가 단순히 ‘유명 브랜드 대 자체 브랜드’의 대결로 정리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소비자의 선택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같은 소비자도 어떤 제품에서는 가격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다른 제품에서는 품질과 브랜드 경험을 중시한다. 한 사람이 제조사 브랜드와 자체 브랜드를 동시에 구매하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소비 방식이 되고 있다.
결국 앞으로 진열대 위에서 살아남는 제품은 ‘누가 만들었는가’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가 원하는 품질을 갖추고, 납득할 수 있는 가격을 제시하며, 자신의 생활과 취향에 맞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고물가와 소비 양극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자체 브랜드의 부상은 일시적인 소비 트렌드를 넘어 글로벌 소비재 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소비자의 장바구니는 이제 브랜드의 크기보다 제품이 제공하는 실질적인 가치를 묻고 있다. ‘유명해서 사는 시대’에서 ‘나에게 필요한 만큼의 가치를 주기 때문에 선택하는 시대’로, 소비시장의 경쟁 기준이 다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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