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필러 없는 코치도어부터 세계 최초 루프 에어백까지…울산 EV공장 제조 과정 담은 테크 필름도 최초 공개
제네시스가 브랜드 초대형 플래그십 전동화 SUV ‘GV90’에 집약된 핵심 기술을 글로벌 시장에 공개하며 새로운 럭셔리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제네시스는 지난 8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팰리스 오브 파인 아츠’에서 GV90에 적용된 주요 기술과 개발 과정을 소개하는 ‘테크 브리프’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GV90의 생산 과정을 담은 테크 필름 ‘Sanctuary of Fineness(완벽함이 빚어지는 곳)’도 처음 공개됐다.
이번 행사는 하루 앞선 19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GV90 월드 프리미어’에 이어 마련됐다. 월드 프리미어가 차량의 디자인과 상품성을 처음 선보이는 자리였다면, 테크 브리프는 GV90에 적용된 기술이 어떤 개발 철학과 과정을 거쳐 완성됐는지를 연구개발 책임자들이 직접 설명하는 자리였다.
국내를 비롯해 북미와 유럽 등 주요 시장의 글로벌 미디어가 참석한 가운데, 현대차그룹 R&D본부장 만프레드 하러 사장을 비롯해 GV90 개발과 생산에 참여한 주요 임원들이 무대에 올라 개발 철학과 차량 구조, 안전, 주행 성능, 정숙성, 제조 기술 등을 소개했다.
만프레드 하러 사장은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새로운 SUV를 개발하는 일이 아니었다”며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에 의문을 던지고, 제네시스에게 럭셔리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불편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순간까지 덜어낸다”
제네시스는 GV90 개발 과정에서 단순히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이 차량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불편까지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제네시스개발담당 허광훈 상무는 GV90을 “제네시스가 지금까지 만든 차량 가운데 가장 어려운 차”라고 소개했다. 플랫폼과 배터리, 전원 체계, 차체 구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뿐 아니라 차량을 생산할 공장까지 새롭게 구축해야 했다는 설명이다.
제네시스는 이를 바탕으로 △수고로움 없는 경험 △고객 안전 최우선 △충실한 기본 성능 △움직이는 프라이빗 라운지라는 네 가지 개발 철학을 GV90에 담았다.
제네시스프로젝트2실 안세진 상무는 “고객이 불편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순간까지 덜어내는 것이 제네시스가 정의하는 럭셔리”라며 기술이 고객 경험을 방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편안함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데 개발의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B필러 없는 ‘네오룬 아치 게이트’, 개방감과 강성을 동시에
GV90에서 가장 주목받은 기술 가운데 하나는 콘셉트 모델 ‘네오룬’에 적용된 코치도어 구조인 ‘네오룬 아치 게이트’다.
일반적인 자동차의 B필러는 차량 중앙에서 지붕과 바닥을 연결하며 차체 강성과 측면 충돌 안전성을 확보하는 핵심 구조다. 때문에 B필러를 제거할 경우 차체 강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자동차 설계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제네시스는 GV90 네오룬에서 B필러를 단순히 없애는 대신, 이를 도어 내부 구조로 옮기고 경주차의 롤케이지 원리를 재해석한 구조를 차체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제네시스바디설계실 이대희 실장은 일반 스윙도어를 적용한 GV90도 높은 수준의 차체 강성을 확보했으며, 네오룬은 이보다 12% 높은 강성을 구현했다고 밝혔다.
이는 넓은 개방감을 확보하기 위해 안전성을 희생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구조 설계를 통해 디자인과 안전을 동시에 추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속 110㎞ 전복 시험…세계 최초 루프 에어백 공개
안전 분야에서는 세계 최초로 적용된 루프 에어백이 주목을 받았다.
제네시스는 실제 도로에서 발생한 약 3800만 건의 사고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발생 빈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탑승객의 중상 위험이 높은 전복 사고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시속 110㎞로 주행하던 차량이 경사로를 타고 넘어지며 전복되는 실제 시험 영상도 공개됐다. 차량이 전복되는 과정에서 루프 에어백을 포함한 12개의 에어백이 전개돼 탑승객 보호를 돕는 모습이 담겼다.
통합안전개발실 이승목 상무는 “정해진 시험을 통과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이 실제로 맞닥뜨릴 수 있는 순간까지 대비하는 것이 제네시스가 생각하는 안전”이라고 강조했다.
제네시스는 법규와 충돌 평가 기준을 충족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사고 상황을 분석하고 이를 차량 설계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안전 기술을 발전시켰다는 설명이다.
고성능과 안락함, 플래그십 SUV의 두 과제
GV90의 주행 성능에서는 역동성과 승차감이라는 상반된 요소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데 기술 개발의 초점이 맞춰졌다.
제네시스는 고성능 차량에 주로 적용되는 e-LSD, 즉 전자식 차동제한장치를 전륜과 후륜에 모두 적용했다. 또 서스펜션의 압축과 인장을 독립적으로 제어하는 모노튜브 듀얼 밸브 전자제어 쇽업소버를 적용해 다양한 주행 환경에서 안정적인 주행과 승차감을 확보하도록 했다.
제네시스시험1실 정성기 실장은 “어떤 노면과 상황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여유로운 주행을 제공하는 것이 제네시스가 생각하는 진정한 럭셔리”라고 설명했다.
플래그십 SUV에 요구되는 강력한 성능뿐 아니라, 장거리 이동에서도 탑승객이 피로를 덜 느끼는 편안함과 정숙성을 함께 구현하는 것이 GV90 개발의 핵심 과제였다는 것이다.
“차를 만들 공장부터 새로 지었다”
이번 테크 브리프에서는 차량 자체의 기술만큼이나 GV90이 생산되는 울산 EV공장의 제조 기술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제네시스는 GV90 생산을 위해 새롭게 구축한 울산 EV공장에 현대차그룹의 제조 기술과 자동화 시스템을 집약했다고 밝혔다.
프레스 공정에서는 유려한 곡면의 차체 패널을 구현하기 위해 6800톤급 서보 프레스와 정밀 검사 설비를 도입했다. 차체 공정에서는 알루미늄 비중이 높은 차체를 견고하게 결합하기 위해 알루미늄과 스틸 등 서로 다른 소재의 특성에 맞춘 4가지 접합 공법을 적용했다.
완성된 차체는 자동 검사 장비를 통해 표면의 미세한 결함까지 확인하고, 이후 자동 사상 공정을 거쳐 도장 단계로 넘어간다.
도장 공정에는 고객이 원하는 색상을 개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맞춤형 컬러 부스가 도입됐다. 또 기존보다 낮은 온도에서 도료를 경화할 수 있는 저온 경화형 도료를 적용해 탄소 배출량을 최대 40% 줄였다는 것이 제네시스의 설명이다.
마지막 조립 단계에서는 실제 도로 환경을 공장 안에서 재현하는 방식으로 정숙성까지 검증한다. 노면의 요철을 재현한 롤러 위에서 차량을 구동하고, 최대 시속 160㎞ 수준의 바람을 발생시켜 주행 중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소음까지 점검한다.
날씨와 도로 상태에 따라 조건이 달라질 수 있는 실제 시험 환경과 달리, 생산되는 모든 차량을 동일한 조건에서 검증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자동화와 장인의 손길이 만나는 곳
이날 처음 공개된 테크 필름 ‘Sanctuary of Fineness’는 GV90이 울산 EV공장에서 하나의 완성차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았다.
영상은 대형 프레스가 알루미늄 패널을 성형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차체 조립과 자동 검사, 도장, 내장재 결합, 최종 완성 단계까지 이어진다.
특히 자동화 로봇과 최첨단 검사 장비 사이에서 작업자가 직접 미세한 단차와 표면 상태를 확인하는 장면을 교차해 배치함으로써, 대량생산 체계 속에서도 사람의 감각과 기술이 품질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차체 패널마다 고유 코드가 새겨지고, 제조 과정에서 축적되는 데이터를 활용해 품질을 관리하는 자동화 시스템도 영상에 담겼다.
제네시스는 이번 영상을 통해 단순히 자동차 생산설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첨단 기술과 사람의 손길이 결합해 하나의 플래그십 차량을 완성하는 과정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영상의 배경음악으로는 전자음악가 키라라와 현대차그룹이 협업해 공개한 음원 ‘정련(精鍊·Temper)’이 사용됐다. 원료가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 하나의 완성된 자동차로 탄생하는 제조 과정을 음악적으로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GV90, 제네시스 전동화 전략의 새로운 이정표
이번 테크 브리프는 신차의 성능이나 디자인을 소개하는 일반적인 공개 행사를 넘어, 제네시스가 플래그십 전동화 SUV를 통해 어떤 수준의 기술력과 제조 역량을 보여주려 하는지를 직접 설명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플랫폼과 배터리, 전장 시스템, 차체 구조, 안전 기술뿐 아니라 생산시설까지 새로운 기준으로 구축했다는 점은 GV90이 제네시스 브랜드의 전동화 전략에서 갖는 상징성을 보여준다.
자동차 산업이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럭셔리 브랜드의 경쟁 역시 단순한 출력이나 첨단 기능의 숫자 경쟁을 넘어 고객 경험과 안전, 승차감, 정숙성, 그리고 제조 품질을 얼마나 정교하게 결합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제네시스는 GV90을 통해 이러한 변화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겠다는 구상이다.
허광훈 상무는 “GV90에 담긴 기술은 연구개발뿐 아니라 상품기획과 생산, 품질, 판매까지 전사가 새로운 기준을 세우며 함께 완성한 결과”라며 “앞으로도 고객이 차를 마주하는 모든 순간을 특별한 경험으로 만들기 위한 도전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GV90이 제네시스의 새로운 플래그십을 넘어 글로벌 럭셔리 전기 SUV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향후 실제 출시와 시장 반응을 통해 확인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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