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 연구에서 단백질의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질병의 원인을 이해하고 신약을 개발하는 데 필수적이다. 특히 최근 수년간 극저온 전자현미경(Cryo-Electron Microscopy, Cryo-EM)은 단백질을 원자 수준에 가깝게 관찰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로 자리 잡으며 구조생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왔다. 그러나 크기가 작은 단백질은 전자빔에 의한 이미지 대비가 낮아 구조를 선명하게 재구성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오랫동안 ‘위상판(Phase Plate)’ 기술 개발에 도전해 왔지만, 기존 장치는 안정성과 해상도 측면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했다. 최근 국제 연구진은 레이저를 활용한 새로운 위상판 기술을 개발해 Cryo-EM의 성능을 크게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의 제목은 「레이저 위상판은 극저온 전자현미경을 이용한 소형 단백질 구조 결정 능력을 향상시킨다(Laser Phase Plate Improves Structure Determination of Small Proteins by Cryo-EM)」이다. 연구는 페타르 N. 페트로프(Petar N. Petrov), 제시 T. 장(Jessie T. Zhang), 조너선 레미스(Jonathan Remis), 제러미 J. 액슬로드(Jeremy J. Axelrod), 항 청(Hang Cheng), 홀거 뮐러(Holger Müller) 등 국제 공동연구진이 수행했으며,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2026년 6월 11일 게재되었다. DOI는 10.1126/science.aeh0665이다.
연구진은 최신 맞춤형 타이탄 크리오스(Titan Krios) 극저온 전자현미경에 레이저 위상판(Laser Phase Plate, LPP)을 장착해 성능을 평가했다. 위상판은 전자파의 위상을 변화시켜 이미지 대비를 높이는 장치로, 생체분자처럼 전자를 거의 흡수하지 않는 시료를 더욱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연구 결과, LPP는 시료 움직임 보정, 초기 프레임 정보 복구, 입자 검출 및 정렬 과정에서 성능을 향상시켜 단일 입자 재구성(Single Particle Reconstruction)의 해상도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작은 단백질일수록 개선 효과가 더욱 두드러졌다.
연구팀은 근육 대사와 관련된 효소 단백질인 알돌레이스(Aldolase)와 혈액 내 산소 운반 단백질인 헤모글로빈(Hemoglobin)을 대상으로 실험을 수행했다. 두 단백질 모두 구조 재구성 해상도가 향상되었지만, Cryo-EM으로 분석하기 어려운 작은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에서 더욱 큰 개선 효과가 확인되었다. 이는 기존 Cryo-EM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수십 킬로달톤(kDa) 규모의 단백질 연구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결과로 평가된다.
현재 Cryo-EM은 일반적으로 70킬로달톤(kDa) 이하의 작은 단백질을 분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연구진은 레이저 위상판 기술이 이 한계를 크게 낮춰 인체 단백질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형 단백질의 구조 규명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구를 이끈 홀거 뮐러(Holger Müller) 교수는 “좋은 시료와 큰 단백질이라면 위상판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작은 단백질이나 품질이 좋지 않은 시료에서는 레이저 위상판이 훨씬 우수한 결과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성과는 단순히 Cryo-EM의 성능 향상에 그치지 않는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세포 내부의 복잡한 단백질 네트워크를 3차원으로 관찰하는 극저온 전자단층촬영(Cryo-Electron Tomography, Cryo-ET) 분야에도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포 내부 환경에서 실제 단백질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직접 관찰할 수 있게 되면 암, 신경퇴행성 질환, 감염병 등 다양한 질환의 분자적 원인을 보다 정밀하게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진은 향후 레이저 위상판에 최적화된 새로운 데이터 수집 및 분석 프로토콜을 개발할 경우, 이번 연구에서 얻은 성과를 넘어 더욱 높은 해상도의 구조 재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극저온 전자현미경(Cryo-EM)이 구조생물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면, 레이저 위상판은 그 범위를 더욱 넓혀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생명의 분자 기계를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창을 제공할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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