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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레오 14세와 찰스 3세 국왕, 500년의 종교적 갈등 넘어 화해의 손길

  • 이경희 기자
  • 입력 2026.10.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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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톨릭과 성공회, 서로의 전통 존중하며 종교적 명예 직함 교환
  •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이어진 분열의 역사 속 그리스도교 일치와 협력의 의미 되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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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 레오 14세와 영국 찰스 3세 국왕이 2025년 10월 23일 바티칸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두 지도자는 이 방문을 계기로 종교적 화해와 협력의 뜻을 확인했다. [사진=News Vaticano X ]

 

약 500년 전 종교개혁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로마 가톨릭교회와 영국 성공회가 오랜 역사를 넘어 화해와 일치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교황 레오 14세와 영국 찰스 3세 국왕이 서로의 종교적 전통을 존중하는 명예 직함을 갖게 되면서 두 교회의 관계에 새로운 상징적 장면이 더해졌다.


바티칸 관련 소식을 전하는 뉴스 바티카노(News Vaticano)는 24일 X를 통해 레오 14세 교황과 찰스 3세 국왕이 약 500년 만에 종교적 명예 직함을 교환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번 소식은 영국 왕실이 23일 발표한 공식 성명에 따른 것이다. 영국 왕실에 따르면 윈저성 성 조지 예배당의 참사회는 찰스 3세 국왕의 승인을 받아 레오 14세 교황에게 성 조지 칼리지의 ‘교황 명예 형제(Papal Confrater)’ 직함을 부여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찰스 3세 국왕이 바티칸을 방문해 로마의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왕실 명예 형제(Royal Confrater)’ 직함을 받은 데 대한 화답이다. 두 지도자가 각자의 종교적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우정을 나누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직함들은 상대 종교기관과의 영적 유대와 친교를 나타내는 명예적 지위다. 교황이나 국왕의 종교적 권한이 달라지거나 소속 교회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분열의 역사를 생각하면 이번 교류가 지닌 의미는 작지 않다.


가톨릭교회와 영국 성공회가 갈라서게 된 것은 16세기 영국 종교개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534년 헨리 8세 국왕은 로마 교황청과 결별하고 영국 국왕의 교회 수장권을 확립했다. 이후 영국 교회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별개의 길을 걷게 됐으며, 두 교회는 오랫동안 종교적 권위와 신앙, 교회 제도를 둘러싼 차이를 안고 관계를 이어왔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가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교황과 영국 성공회의 최고 통치권자인 영국 국왕이 서로의 종교기관에서 명예 직함을 갖게 된 것은 특별한 상징성을 지닌다. 신학적 차이가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전통을 인정하면서 공통의 가치를 찾아가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교류의 시작은 지난해 10월 23일 찰스 3세 국왕과 커밀라 왕비의 바티칸 국빈 방문이었다.


당시 찰스 3세 국왕은 레오 14세 교황을 만나 그리스도교의 일치와 환경 보호 등 공동의 관심사를 논의했다. 특히 두 지도자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창조세계 보호를 위한 공동 기도에 참여하며 종교적 화해의 뜻을 나눴다.


이 장면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재위 중인 영국 국왕과 교황이 공개적으로 함께 기도한 역사적인 순간으로 주목받았다. 오랜 세월 서로 다른 종교적 전통을 이어온 두 지도자가 같은 공간에서 공동의 가치를 위해 기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찰스 3세 국왕은 같은 날 로마의 성 바오로 대성전을 방문해 왕실 명예 형제 직함을 받았다. 이 성당은 오래전부터 영국 왕실과 역사적 관계를 맺어온 곳으로, 당시 직함 수여는 과거의 인연을 오늘날의 우정과 협력으로 이어가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올해 10월, 영국 왕실이 레오 14세 교황에게 윈저성 성 조지 예배당의 명예 직함을 부여하면서 두 지도자 사이의 상호 교류가 완성됐다.


이러한 관계를 기념하기 위한 상징적인 공간도 마련되고 있다. 영국 왕실에 따르면 로마의 성 바오로 대성전에는 찰스 3세 국왕을 위한 특별 제작 의자가 설치돼 있으며, 윈저성 성 조지 예배당에도 레오 14세 교황을 위한 의자가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두 의자는 각자의 종교적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상대를 기꺼이 맞이하겠다는 환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영국 왕실은 올해 가을 찰스 3세 국왕이 성 조지 예배당에서 열리는 예식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는 지난해 레오 14세 교황이 국왕에게 선물한 그리스도 모자이크 성화의 봉헌과 설치도 이뤄질 예정이다.


가톨릭과 성공회가 서로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두 교회는 오랜 시간 신학적 대화와 공동 기도, 사회적 협력을 이어오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 왔다.


최근에는 종교적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평화와 환경 보호, 인간의 존엄성 등 인류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환경 보호는 두 지도자가 공통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분야다. 찰스 3세 국왕은 오랫동안 기후변화 대응과 자연환경 보전에 관심을 보여 왔으며, 가톨릭교회 역시 창조세계의 보호와 생태적 책임을 강조해 왔다. 지난해 바티칸에서 열린 만남에서도 이러한 공통의 관심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영국 왕실은 이번 직함 교환에 대해 분열과 갈등이 깊어지는 세계에서 두 지도자가 서로를 갈라놓는 차이보다 하나로 이어주는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스 바티카노가 24일 전한 소식의 마지막에는 성경 요한복음 17장 21절의 구절이 담겼다.


“모두가 하나가 되게 하소서.”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바라는 이 기도는 이번 교류가 지향하는 의미를 잘 보여준다.


약 500년 전 종교적 갈등으로 갈라선 두 교회가 이제는 서로의 전통을 존중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물론 이번 명예 직함 교환만으로 오랜 신학적 차이나 역사적 갈등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통의 가치를 확인하는 일은 화해를 향한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레오 14세 교황과 찰스 3세 국왕의 이번 교류는 오랜 분열의 역사 속에서도 대화와 존중을 통해 관계를 새롭게 이어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교회가 차이를 넘어 함께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만남과 직함 교환은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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