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술사는 오랫동안 ‘고급 취향’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왔다. 절제된 형식, 난해한 개념, 그리고 진지함은 예술의 품격을 가늠하는 기준처럼 여겨졌다. 그런 미술계 한복판에서 유독 낯설고도 소란스러운 그림을 그린 화가가 있었다. 바로 베릴 쿡(Beryl Cook)이다.
그녀의 그림 앞에 서면 관람자는 종종 웃음을 터뜨린다. 때로는 당황한다. 화면 속 인물들은 지나치게 풍만하고, 술집은 지나치게 시끄럽고, 몸짓은 연극처럼 과장되어 있다. 춤추는 중년 여성들, 시장에서 떠드는 사람들, 화려한 화장을 한 드래그퀸과 게이 커뮤니티의 인물들까지. 그녀의 세계는 우아함보다 활기와 소음, 품위보다 인간적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녀의 그림에는 하나의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바로 ‘키치(Kitsch)’라는 단어다.
원래 키치는 지나치게 대중적이고 감상적이며 통속적인 미학을 비판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였다. 값싼 장식품, 상업 포스터, 과장된 감정 표현처럼 ‘고급 예술이 아닌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근대 미술은 오랫동안 키치를 예술의 반대편에 놓아두었다. 진지함 대신 웃음을, 절제 대신 과잉을, 고상함 대신 대중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릴 쿡은 바로 그 금기였던 영역으로 걸어 들어갔다.
1926년 영국 서리에서 태어난 그녀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독학 화가였다. 사무직과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가던 평범한 중산층 여성이었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것도 중년 이후였다. 남편과 함께 항구도시 Plymouth로 이주한 뒤, 그녀는 거리와 술집, 시장과 클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그녀 예술의 중심이 되었다.
그녀의 그림 속 인물들은 전통 회화 속 이상화된 누드나 귀족적 초상이 아니다. 뱃살이 드러난 여성들, 술에 취해 노래하는 노동자들, 화려한 패션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성소수자 공동체의 인물들이다. 그들은 세련되거나 우아하지 않다. 하지만 누구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다.
베릴 쿡의 키치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삶의 풍경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과장된 색채와 둥근 형태, 만화 같은 인체 표현으로 더욱 강조했다. 그녀의 화면 속 인물들은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있으며, 술집은 연극 무대처럼 떠들썩하다. 그러나 그 과장은 조롱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 그리고 삶에 대한 따뜻한 유머가 존재한다.
대표작인 《Street Market》 연작이나 술집 시리즈를 보면 사람들은 거의 배우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인물들을 비웃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우스꽝스러움 자체를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바로 베릴 쿡 회화가 지닌 독특한 온기다.
이 지점에서 그녀의 키치는 단순한 ‘싸구려 미학’과 구분된다.
그녀는 엘리트 중심 미술계가 외면해왔던 노동계급과 대중문화를 예술 안으로 끌어들였다. 특히 그녀가 그린 여성들은 당시 미술의 전형적 여성상과 완전히 달랐다. 미술 속 여성은 오랫동안 아름답고 날씬하며 침묵하는 존재로 재현되어 왔다. 그러나 베릴 쿡의 여성들은 먹고, 마시고, 춤추고, 욕망한다. 자신의 몸을 숨기지 않고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유머가 아니다.
기존 미의 기준에 대한 조용한 반란이다.
또한 그녀는 1970~80년대 영국 사회에서 쉽게 주변화되던 LGBTQ+ 공동체를 자연스럽게 화폭 안에 포함시켰다. 게이 바와 나이트클럽의 풍경을 특별하거나 이국적인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일상적 풍경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시선이었다.
오늘날 그녀의 작품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6년 The Box에서 열린 탄생 100주년 기념전 <Beryl Cook: Pride & Joy>는 과거 ‘가볍다’고 평가받았던 그녀의 그림을 새롭게 조명했다. 이제 그녀의 작품은 단순한 유머 회화가 아니라, 영국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과 대중의 삶을 기록한 중요한 시각문화 자료로 재평가되고 있다.
결국 베릴 쿡의 예술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예술은 반드시 어렵고 진지해야 하는가.
왜 웃음과 과장, 통속성과 유머는 예술이 될 수 없는가.
그녀의 그림은 고급 취향과 저급 취향 사이의 경계를 흔든다. 그리고 그 경계가 사실은 시대와 권력이 만들어낸 인위적 구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베릴 쿡의 키치는 단순한 장식적 유희가 아니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복원한 대중미학의 선언이며, 예술이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다시 묻는 따뜻한 반항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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