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감염병 대응 과정에서 세계보건기구(WHO)와의 직접 소통을 제한하면서 국제 보건 협력 체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한타바이러스와 에볼라 확산 가능성이 동시에 제기되는 가운데, 미국 보건 당국 내부의 리더십 공백과 국제 공조 약화가 세계 보건 안보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언론과 해외 보건 관계자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국립 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NIAID) 소속 연구진과 관계자들이 세계보건기구(WHO)와 직접 협의하거나 회의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는 내부 지침을 시행했다. 일부 관계자들은 제한적으로 화상회의에 참석할 수 있지만, 발언이나 정책 제안 없이 청취 역할만 수행하도록 지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치는 미국이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WHO 탈퇴 절차를 공식화한 이후 이어진 국제 보건 협력 축소 흐름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미국 보건복지부(HHS)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통해 WHO와 필요한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현직 및 전직 보건 전문가들은 실제 현장에서는 국제 정보 공유 체계가 이전보다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최근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을 중심으로 에볼라 확산 위험이 다시 높아지면서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해당 지역의 에볼라 위험 수준을 “높음”에서 “매우 높음”으로 상향 조정했다. 아직 미국 내 확진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감염 지역 방문 이력이 있는 승객들을 대상으로 미국 주요 국제공항에서 건강 검진과 추적 관찰이 진행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긴장감이 이어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동하던 미국인 의사가 감염 의심 증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며, 가족들 역시 격리 조치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 보건 전문가들은 “에볼라와 같은 치명적 전염병은 초기 국제 정보 공유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 내 한타바이러스 대응 과정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발생한 크루즈선 승객 일부가 네브래스카에서 격리 치료를 받고 있으며, 하선 승객들과 관련 항공편 탑승자들에 대한 추적 관리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응 과정에서 미국 보건 시스템의 지휘 체계 혼선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 보건 분야 핵심 직책 상당수는 현재 공석 상태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소장, 공중보건국장, 식품의약국(FDA) 국장, 보건복지부 차관 등 주요 직위가 장기간 비어 있거나 임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해외 언론들은 이를 “미국 공중보건 역사상 보기 드문 리더십 공백”이라고 평가했다.
전직 CDC 고위 관계자인 댄 저니건 박사는 “31년 동안 CDC에서 근무했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 본다”며 “국가 감염병 대응 체계의 연속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의 WHO 탈퇴와 국제개발처(USAID) 예산 축소가 장기적으로 글로벌 방역 체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과거 미국은 에볼라와 코로나19, HIV/AIDS 대응 과정에서 국제 백신 개발과 감염병 정보 공유를 주도해왔지만, 현재는 그 역할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 및 바이든 행정부 시절 국무부 보건 정책에 참여했던 제레미 코닌딕 은 “과거에는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성 질환이 발생하면 미국 보건기관과 국제기구 간 즉각적인 보고 체계가 작동했지만, 지금은 그 연결망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 국무부와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비판을 반박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CDC 전문가들을 콩고민주공화국과 우간다에 추가 파견할 계획이며, 감염병 감시와 진단 시스템도 정상적으로 운영 중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제한적인 WHO 협력만으로도 미국 국민 보호에는 충분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 보건 전문가들은 감염병 시대에는 어느 한 국가만의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경고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는 더욱 긴밀한 국제 공조 체계를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의 국제 보건 리더십 축소가 향후 새로운 팬데믹 대응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에볼라와 한타바이러스처럼 치명률이 높은 감염병은 초기 탐지와 국제 정보 공유, 공동 연구 체계가 핵심인데, 현재 미국의 WHO 협력 제한 조치는 이러한 글로벌 대응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감염병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며 “국제 협력의 약화는 결국 전 세계적인 위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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