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할 당시 내세웠던 구상과 현재 중동의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나타나고 있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앞세워 이란의 핵·미사일 능력을 무력화하고 정권의 항복을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은 전쟁이 시작된 지 약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결정적인 종결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국과 이란의 대립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해상 긴장과 걸프 국가로의 확산, 국제유가 상승, 이란의 비대칭 공격으로 이어지며 장기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8월 18일 “이란과 어떠한 협상도 진행되고 있지 않으며 예정된 회담도 없다”고 밝힌 것은 현재 상황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불과 하루 전에는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비공식적인 ‘백채널’이 구축됐다고 밝혔던 만큼 미국의 대이란 전략 역시 외교와 압박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이다.
‘짧고 강한 전쟁’에서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전쟁 초기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목표는 매우 컸다. 이란의 탄도미사일 능력과 생산시설을 파괴하고 해군력을 무력화하며 핵무기 개발을 차단하고 친이란 대리세력의 활동까지 약화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이후에는 이란 내부의 정권 교체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문제는 군사적 타격과 정치적 결과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막대한 공습으로 이란의 군사시설과 지휘부, 인프라가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란 체제 자체가 무너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란은 미사일과 드론, 지역 내 친이란 세력을 활용한 비대칭 전략으로 대응하면서 전쟁의 공간을 이란 영토 밖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선박 공격과 긴장이 이어지고 있으며, 예멘의 후티 반군과 이라크 내 친이란 세력 등도 중동의 여러 전선에서 압박을 가하고 있다.
결국 미국이 압도적인 공군력과 해군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전쟁을 원하는 시점에 끝낼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란은 패배했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현재 상황을 ‘이란의 승리’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이란은 막대한 인명과 경제적 피해를 입었고 군사시설 역시 상당 부분 파괴됐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전쟁 장기화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처음 기대했던 결정적인 정치적 결과 역시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과 이란이 지난 6월 체결했던 60일간의 임시 합의는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화와 전쟁 종식을 위한 출구로 기대됐지만, 8월 17일 시한이 만료될 때까지 최종적인 평화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미국은 제재와 해상 봉쇄를 유지하고 있고, 이란은 미국의 제재 해제와 군사적 압박 중단 등을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전쟁이 당초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누가 더 강한가’라는 질문보다 ‘누가 먼저 전쟁을 끝낼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보여주는 힘의 한계
이러한 상황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호르무즈 해협이다.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통로인 이 해협은 미국의 막강한 해군력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협이 안전하게 개방돼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란은 미국이 합의 조건을 이행하기 전까지 해협을 정상적으로 개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 선박 통항은 크게 위축됐고 국제유가 역시 다시 상승하고 있다.
18일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91달러를 넘어섰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운송이 장기간 차질을 빚을 경우 세계 에너지 시장 전체가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는 현대전에서 군사적 승리와 전략적 승리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이 이란의 특정 시설을 파괴할 수는 있지만, 이란이 해협과 지역 내 무장세력, 미사일과 드론 등을 활용해 세계 경제에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까지 단기간에 제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강대국의 침공=완전한 승리’라는 공식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이번 전쟁이 던지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강대국의 군사력이 어디까지 정치적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이용해 상대국의 주요 도시와 군사시설을 파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정치적 의지와 사회적 저항, 지리적 조건, 비대칭 전력까지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특히 이란처럼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으며 오랜 국가 정체성과 강한 안보조직을 가진 국가를 외부의 군사력만으로 굴복시키는 것은 훨씬 복잡하다.
전쟁 초기 미국이 목표로 삼았던 것이 ‘군사력의 제거’였다면 현재 미국이 마주한 문제는 ‘이란이 계속 싸울 의지를 어떻게 꺾을 것인가’다. 이것은 폭격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정치적 문제다.
최근 미국의 대이란 전략이 군사적 공격뿐 아니라 제재와 해상 봉쇄, 협상 압박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이동한 것도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전쟁의 승패보다 ‘출구’가 중요해진 미국
더 큰 문제는 전쟁을 끝내는 과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초기에 강한 압박과 ‘무조건 항복’을 강조했던 것과 달리 현재는 미국 역시 협상과 휴전,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화라는 출구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 놓였다. 실제 6월 합의가 마련됐다는 사실 자체가 군사력만으로 사태를 종결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출구마저 막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재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고, 이란 역시 미국의 압박 아래에서는 협상하지 않겠다고 맞서고 있다. 양측 모두 상대에게 먼저 양보하라고 요구하면서 전쟁의 종결 조건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중동의 다른 국가들이 영향을 받고 있다. UAE는 이란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을 탐지했다고 밝혔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에너지 시설을 둘러싼 후티 반군의 공격 위협도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습 역시 미국으로부터 ‘불필요한 긴장 고조’라는 비판을 받았다.
진짜 승리는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끝내는 것
이번 이란전이 장기화될수록 국제사회가 주목하게 될 지점은 ‘미국이 이란을 얼마나 많이 파괴했느냐’가 아니다. 핵심은 미국이 원하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어떻게 전쟁을 끝낼 수 있느냐에 있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군사력의 크기가 정치적 결과의 크기를 자동으로 결정하지는 않는다. 상대 국가의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것과 그 국가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이란 역시 마찬가지다. 호르무즈 해협을 압박하고 미사일과 대리세력을 활용한다고 해서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란 역시 전쟁 장기화로 막대한 경제적·인적 비용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양측 모두 상대방을 완전히 굴복시키기보다는 어느 순간 협상을 통해 전쟁을 종결해야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번 전쟁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리 강한 국가라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 ‘완전한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전쟁은 폭격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평화를 만드는 것은 폭격만으로 할 수 없다.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란전은 그 군사력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상대 국가의 의지와 지리, 사회, 정치적 저항까지 한꺼번에 제거할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당초 ‘짧고 결정적인 전쟁’을 기대했던 전략이 약 6개월의 대치와 새로운 협상 교착으로 이어진 지금, 트럼프 행정부가 마주한 가장 큰 과제는 이란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명분과 실리를 모두 확보하면서 전쟁을 끝낼 것인가가 됐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강대국이 전쟁에서 마주하는 가장 어려운 질문일 수 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과 전쟁을 끝내는 것은 다르다. 현재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이란 대치는 이 단순하지만 오래된 진실을 다시 확인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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